숲노래 책숲마실


아름빛 (2022.12.7.)

― 광주 〈예지책방〉



  아침 일찍 집을 나섭니다. 오늘은 광주로 갑니다. 이튿날 아침에 장흥 대덕중학교 푸름이를 만나서 ‘시골에서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는 어른이 들려주는 글쓰기와 삶짓기 이야기’를 펴려고 하기에 미리 나섭니다. 돌림앓이 탓에 고흥·장흥을 잇는 시외버스가 끊겼어요. 옆 시골이지만 광주를 끼고 한참 돌아가야 합니다.


  하루를 오롯이 광주에서 보낼 텐데, 버스나루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갈아타고서 〈예지책방〉으로 찾아갑니다. 잿집(아파트) 물결을 지나고, 어린배움터 옆을 걷습니다. 책집 앞까지 왔는데 아직 안 열었습니다. 아마 바깥일을 보실 테지요.


  책집 앞에 그림책이 몇 자락 있습니다. 책벼리(도서목록)도 있습니다. 슬슬 읽고서 노래꽃(동시)을 한 자락 씁니다. 요 며칠 문득 되새기는 《이오덕 일기》를 생각하면서 ‘책한테 드림 19’을 여밉니다. 어린이·푸름이·어른이 함께 곁에 둘 만한 아름책을 떠올리면서 ‘책한테 드림’이라는 노래꽃을 엮어요. 아름책을 읽은 마음을 옮기고, 아름책에 흐르는 삶빛을 담아 봅니다.


  둘레에서는 ‘추천도서·권장도서’ 같은 일본 한자말을 쓰는데, 저는 이런 이름은 안 쓰고 싶습니다. 함께 읽자고 알려줄 만한 책이라면 ‘아름책(아름다운 책)’이나 ‘사랑책(사랑스러운 책)’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꽃책(꽃다운 책)’이나 ‘빛책(빛나는 책)’이라는 이름을 슬며시 붙이기도 합니다.


  풀꽃나무한테 이름을 처음 붙인 옛날 옛적 시골사람 마음을 그리면서 ‘아름책·사랑책·꽃책’처럼 새말을 짓습니다. 일본말 ‘동시’도 ‘노래꽃’으로 풀어내 보고요. 일본말이나 일본 한자말이라서 나쁘지는 않아요. 일본사람은 그들 나름대로 아이를 사랑하는 눈빛으로 새말을 여밀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아이를 사랑하는 눈망울로 새말을 엮을 뿐이고요.


  배우려고 하기에 멈추지 않으면서, 신나게 놀고 노래하며 달릴 줄 알기에 튼튼히 자라나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라고 느낍니다. 이무렵 빛나는 숨결은 온몸을 쓰며 움직일 적에 눈부시게 마련이에요. 젊은이뿐 아니라 누구나 쇳덩이(자동차)를 몰기보다는 자전거를 달릴 적에 어울립니다. 부릉이(자동차)하고 사귀기보다 이 땅하고 사귀는 길이 아름답습니다. 아름사람은 맨손 맨발 맨몸으로 하늘숨을 마셔요.


  우리는 ‘우리’를 씁니다. 나는 ‘나’를 쓰지요. “우리를 쓴다”나 “나를 쓴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돌아보고 아로새깁니다. 우리가 스스로 빛나고, 내가 스스로 반짝입다. 얼어붙는 겨울에 즐거운 마음이 신나는 몸짓으로 피어나는 하루라면 겨울꽃이겠지요. 스스로 마음을 담아 읽으면, 어느 책이든 반짝거릴 수 있어요.


ㅅㄴㄹ


《곁책》(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21.7.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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