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길손빛 (2022.8.26.)

― 제주 〈바라나시 책골목〉



  여름이 무르익는 새벽에 마을 앞에서 택시를 타고서 녹동나루로 갑니다. 오늘은 작은아이하고 제주로 이야기마실을 갑니다. 제주 〈노란우산〉에서 8월 동안 ‘노래그림잔치(시화전)’를 열면서 이틀(27∼28) 동안 우리말·노래꽃·시골빛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를 꾸립니다.


  환한 아침나절에 배를 네 시간 달리는데, 손님칸(객실)에 불을 켜 놓는군요. 밝을 적에는 햇빛을 맞아들이면 즐거울 텐데요. 손님칸이 너무 밝고 시끄럽다는 작은아이하고 자주 바깥으로 나가서 바닷바람을 쐽니다. 이제 제주나루에 닿아 시내버스로 갈아탔고, 물결이 철썩이는 바닷가를 걸어서 〈바라나시 책골목〉에 들릅니다. 무더운 날씨라지만, 이 더위에는 뜨거운 짜이 한 모금이 몸을 북돋울 만합니다.


  집에서건 바깥에서건, 아이라는 마음빛을 품고서 살아가는 어른으로 바라보려 합니다. 시골길이건 서울길(번화가)이건 언제나 즐겁게 맞이하면서 다독이고 삭이자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라볼 곳은 아이하고 어깨동무할 살림터요, 우리가 쓸 글은 아이하고 노래하듯 여미고 나눌 생각이 흐르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작은아이는 배에서 내려 〈바라나시 책골목〉으로 걸어오는 길에 본 제주 모습을 글붓으로 슥슥 그립니다. 저는 배를 타고 오면서 떠올린 이야기를 쪽종이에 열여섯 줄 노래꽃으로 옮겨적습니다.


  우리말 ‘온’은 셈으로 ‘100’입니다. ‘온통·온갖·온마음·온누리’에 깃들어 살아온 이 말씨는 ‘오르다·오롯하다·옹글다·올차다·옳다’에다가 ‘옷’이라는 낱말을 이루는 뿌리인 ‘오’를 함께 씁니다.


  우리말 ‘잘’은 셈으로 ‘10000’입니다. ‘잘하다·잘나다’에 스며 이어온 이 말씨는 ‘자’를 뿌리로 삼으며, ‘자다·자라다’하고 맞물립니다. 셈으로 ‘억’을 가리키는 ‘골’은 ‘골백번’에 남아 잇기도 하지만, ‘골골샅샅·골짜기·멧골’이라든지 ‘골·고을’로도 잇고 ‘골(뇌·두뇌)’하고도 이어요.


  대단하거나 놀랍다 싶은 텃말(토박이말)을 캐내어 외워야 우리말을 사랑하는 길이지는 않습니다. 늘 쓰는 수수한 말씨에 깃든 뿌리를 가만히 짚으면서 우리 마음을 이루는 바탕에 어떤 숨결과 살림결이 스몄는가를 읽을 줄 알면 즐거울 ‘우리말 살려쓰기’입니다.


  글쓰기를 할 적에 말을 말답게 살리고, 말하기를 하면서 말을 말스럽게 돌보는 실마리를 누구나 헤아리기를 바라요. 투박한 말씨 하나로 말밑뿐 아니라 밑넋을 북돋웁니다. 스스로 삶을 한결 깊고 넓게 사랑하는 길은 ‘쉬운말’에 있습니다.


ㅅㄴㄹ


《나는 누구인가》(라마나 마하리쉬/이호준 옮김, 청하, 1987.4.25.첫/20111.10.13./고침5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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