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12.19.
숨은책 803
《寫眞藝術의 創造》
A.파이닝거 글
최병덕 옮김
사진과평론사
1978.6.30.
가난한 살림에 후줄그레한 찰칵이(사진기)를 쓰는 저를 딱하게 여긴 어른 한 분이 2000년 겨울에 “사진을 좀더 잘 찍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무렵 제 두 달치 일삯을 치를 만한 찰칵이를 사주신 적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찍는지 알아야 한다며 ‘김기찬 골목 사진 전시회’에도 끌고 가서 보여주었고요. 작은 보임집(전시관) 한켠에 앉아서 ‘손님 없는 곳’을 지키던 흰머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분이 김기찬 님인 줄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2005년 8월 27일에 김기찬 님은 찰칵이를 내려놓고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해 9월에 서울 용산 어느 ‘갤러리’에 김기찬 님 책(소장도서)을 드렸다(기증)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10월 8일 용산 헌책집 〈뿌리서점〉에 갔더니 “어, 최 선생, 오늘 좋은 사진책이 잔뜩 들어왔어. 여기 와서 보시게!” 하고 부릅니다. 무슨 사진책인가 싶어 들여다보니 ‘김기찬 님 책’입니다. “사장님, 지난달에 ○○갤러리에 드린 책이라고 들었는데요.” “그래? 그런데 다 고물상에 버려졌던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이날 차마 책더미를 들추지 못 했습니다. 이레 뒤(2005.10.15.) 다시 와서 ‘안 팔리고 남은 부스러기’인 《寫眞藝術의 創造》를 삽니다. 붉게 밑줄 그으며 읽은 자취가 고스란하고, 책끝에 ‘김기찬 1979.3.17.’ 같은 글씨가 남습니다. 이튿날 충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며 ‘2005.10.16. 동서울→무극’ 표를 꽂아 놓습니다. 2005년 이무렵, 저는 이오덕 어른 글(유고)을 갈무리하며 지냈어요. 헌책집 〈뿌리서점〉 지기님은 “나중에 들어 보니 그 갤러리에서 자기들 책하고 겹치는 책은 다 버렸다고 하더라고. 귀하지 않은 책은 버렸다고 하더구만.” 하고 뒷얘기를 들려줍니다. 책 안쪽에 남은 “동방서림 22-1207 구내 3404” 쪽종이를 살살 쓰다듬었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