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골목에 피는 꽃 (2022.8.23.)
― 인천 〈책방 모도〉
어제 서울·부천에서 이야기꽃을 폈고, 오늘은 인천 배다리에서 이야기꽃을 폅니다.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에 여미는 이야기꽃은 ‘마을꽃 + 숲꽃 + 살림꽃을 여미는 말꽃’이라고 할 만합니다. 드문드문 펴는 수수한 수다꽃입니다.
저녁까지 말미가 넉넉합니다. 아침에 부천 〈빛나는 친구들〉에 들르고서 천천히 전철을 탑니다. 낮에 인천으로 가는 전철은 햇빛이 가득 들어오면서 호젓합니다. 동인천나루에서 내려 걷습니다. 송현2동은 안골이 꽃골목이고, 화평동에는 ‘박정희 할머니 평안수채화의 집’ 터가 있으며, 안쪽에 ‘함세덕 옛집’이 있습니다. 우리 언니는 송현1동 작은집에서 조용히 살고, 곁에 붙은 송림 1·2동은 오르막에 어깨동무하는 골목집이 호젓하지만 어느새 잿터(아파트 단지)로 바뀝니다.
푸름이로 살던 1991∼1993년에 화수동·만석동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어요. 오랜 너나들이가 이곳에서 살았거든요. 이제 다 잿빛더미로 바뀌었지만 옛골목을 디딜 적마다 우리가 어떤 놀이를 하고 무슨 수다를 폈는지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송현초등학교하고 화도진중학교 사이에 깃든 〈책방 모도〉 앞에 섭니다. 이 포근한 자리를 마을책집으로 알뜰하게 가꾸어 내는 손길을 느끼면서 한참 해바라기를 합니다. 골목집은 서로 햇볕을 나누어요. 해가 흐르는 결에 따라 이 집에도 저 집에도 찬찬히 볕살이 스미면서 도란도란 따사롭습니다.
마을꽃은 마을사람이 손수 씨앗을 심기에 핍니다. 이러다 작은새가 찾아들면서 꽃씨를 퍼뜨리고, 개미도 살살 오가면서 돌틈에 씨앗을 옮깁니다. 숲꽃은 들숲바다에서 사람하고 이웃으로 지내는 뭇숨결이 이 푸른별에 저마다 씨앗을 심으며 핍니다. 숲이 있기에 밥옷집을 누리고 삶을 가꿔요. 살림꽃은 어른으로서 사랑을 속삭이면서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로 거듭나면서 마음이랑 온몸으로 피웁니다.
우리가 저마다 “아, 이 말은 어떤 뿌리일까?” 하고 궁금하게 바라보는 생각이 씨앗처럼 싹트면, 어느 날 문득 “아, 이 말은 아마 그런 뿌리일는지 몰라.” 하는 이야기가 빛줄기처럼 찾아들 날이 있어요. 이곳에 들꽃이 피고 우람나무가 자라면 아름다울 텐데 하고 생각을 심으면, 어느 날 새랑 개미가 바지런히 씨앗을 물어 날라서 골목빛을 북돋웁니다.
들꽃 같은 부드러운 말로 만나요. 아이어른은 한마음으로 상냥하게 사귈 만합니다. 숲바람처럼 싱그러운 말로 마주하기를 바라요. 바닷방울처럼 맑은 말로 어울리면서 빗물처럼 시원한 말로 이야기하면, 누구나 별빛처럼 환한 말로 생각을 펴서 글을 여밀 수 있습니다. 햇볕을 품은 말씨로 노래를 부릅니다.
ㅅㄴㄹ
《동네에서 서점이 모두 사라진다면》(김현우·윤자형, 화수분제작소, 2022.5.10.)
《사랑하는 미움들》(김사월, 놀, 2019.11.13.)
《Little People Big Dream 로자 파크스》(리즈베스 카이저 글·마르타 안텔로 그림/공경희 옮김, 달리, 2019.10.14.첫/2020.5.13.2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