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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소를 타고 - 개정판 ㅣ 민음의 시 8
최승호 지음 / 민음사 / 2007년 4월
평점 :
숲노래 시읽기 2022.12.8.
노래책시렁 276
《진흙소를 타고》
최승호
민음사
1987.4.15.
“노래를 하는” 사람은 차츰 줄고 “시를 창작하는” 사람은 갈수록 늡니다. ‘시·소설·문학’ 같은 이름을 내걸거나 받거나 듣거나 올려야 한다고 여기기에 ‘노래하기’ 아닌 ‘시작(詩作)’이라고까지 아예 일본스런 한자말을 쓰는 사람까지 꽤 많습니다. 왜 “기성시인·평론가 입맛에 맞추 시문학 창작”을 해야 할까요? 왜 “오늘 하루를 스스로 노래하는 마음빛을 풀어내기”하고 등질까요? 시골에서도 서울(도시)에서도 자전거나 두 다리나 버스로 움직이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요새는 ‘시인도 소설가도 평론가도 기자도 작가도 자가용을 몰기 일쑤’입니다. 부릉부릉 몰기에 나쁘지는 않아요. 그러나 아침저녁 북새판에 납작오징어처럼 밟혀 보지 않은 이가 무슨 글을 쓸까요? 아기를 낳고 안고 돌보고 사랑하는 하루를 살아내지 않은 이가 무슨 노래를 부를까요? 《진흙소를 타고》를 읽고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늙은 사내’들은 으레 ‘사창가’ 얘기를 글로 쓰더군요. ‘쓰레기 청소부 마씨 = 聖者다운’ 같은 얘기는 그저 구경꾼으로 어깨너머에서, 또는 ‘자가용 차창 밖으로 흘깃 본’ 잔소리입니다. 제 삶을 쓰지 않고, 구경하거나 흘깃거린 바깥모습에 얽매이는 글이 문학이거나 시라면, 우리나라에는 문학도 시도 없습니다.
이제는 늙어 사창가에서도 쫓겨난 이후 / 같이 늙어가는 사내들에게 낡아빠진 몸을 팔려고 / 空山을 쏘다니는 들병이는 들여우 털을 뒤집어썼네 / 달밤에 헌 담요 펴고, 흰 종이컵에 소주 따르며 / 쥐포를 뜯는다, 들병이, 그 혼자 센 머리에 갈대꽃을…… (갈대꽃/24쪽)
쓰레기 청소부 늙은 마씨는 쓰레기를 뒤집어쓴 채 / 늙은 말 같은 삶에도 두레질 하지 않고 / 그래서 聖者다운 삶, 쓰레기 청소부 늙은 마씨는 / 왜 허구헌날 이렇게 남이 버린 쓰레기더미에 처박혀서 (쓰레기 청소부 마씨/25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