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12.3.

숨은책 776


《Van Gogh, Auvers sur oise》

 Fernand Hazan 엮음

 Fernand Hazan

 1956.



  손으로 책을 쥐면, 숲에서 자라던 나무가 품은 숨결이 번집니다. 셈틀이나 손전화를 켜서 읽으면 ‘줄거리’를 훑을 뿐이지만, 나무한테서 얻은 종이로 묶은 책에는 ‘해바람비를 머금고 살던 숲빛’이 흐릅니다. 1994년에 서울 한국외대 네덜란드말 학과에 갓 들어갈 즈음, 책숲마실을 즐기는 윗내기(선배)한테서 서울 홍대 앞에 〈글벗헌책가게〉라는 곳이 있으니 찾아가 보라는 귀띔을 들었어요. 아직 한창 추운 2월 한복판에 혼자 찾아가서 개미굴 같은 골마루를 누빕니다. 《연려실기술》을 살폈고 《Van Gogh, Auvers sur oise》를 골랐습니다. 헌책집지기는 “젊은이는 뭘 배우는데 영 다른 두 책을 고르나?” 하고 묻습니다. “네덜란드말을 배워서 통·번역 하는 일을 하려고요. 네덜란드 살림을 담은 그림도 보고, 우리 발자취를 담은 이야기도 읽으려고요.” 이날 장만한 ‘환 호흐(반 고흐)’ 조그마한 그림책을 한 해 내내 주머니에 꽂고서 틈틈이 들여다보았습니다. 만나는 이웃이나 동무한테 으레 보여주면서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작고 이쁘게 멋진 책을 다 내네. ‘오베르 쉬르 와즈’를 느낄 수 있어.” 하고 속삭였습니다. 2001년 무렵, 우리 집에 놀러온 어느 분이 작은책을 훔쳐갔습니다. 다시 만나기 어려운 책을 울면서 그리다가 스무 해 만에 헌책집에서 다시 만났어요. 살살 쓰다듬었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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