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종이들 - 사소하고 사적인 종이 연대기
유현정 지음 / 책과이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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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1.20.

인문책시렁 252


《나의 종이들》

 유현정

 책과이음

 2022.5.25.



  《나의 종이들》(유현정, 책과이음, 2022)은 종이를 줄거리로 삼습니다. 저부터 스스로 언제나 종이꾸러미를 품고 살아가기에 눈여겨보았습니다. ‘종이꿰미’를 줄기로 삼되 ‘종이’보다는 ‘종이 곁에 있는 글쓴이 삶길’을 풀어내려고 하는구나 싶은데, 어쩐지 종이 이야기가 덜 나오거나 겹쳐서 아쉽습니다.


  글쓴이 아버지부터 종이를 다루는 일을 한다면, 아버지 손끝으로 태어난 숱한 종이 이야기가 있을 만합니다. 끝자락에 가서야 헌종이를 모으는 할머니하고 마주하는 아버지 이야기가 살짝 나오는데,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종이를 건사하는 살림을 조금 더 지켜보거나 말을 듣고서 책을 쓰면 어떠했으랴 싶어요.


  신문종이는 참으로 쓸모가 많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 곁에서 늘 심부름을 하고 집안일을 거들면서 신문종이 쓰임새를 익혔습니다. 마을에서 누가 신문종이를 내놓으면 얼른 챙겨요. 집에서도 쓰지만, 배움터에서는 다달이 ‘폐지 수집’이라면서 신문종이 몇 킬로그램에 빈병 몇에 이것저것 바치도록 시킵니다. ‘폐지 수집’ 눈금을 채우지 못 하면 길잡이가 두들겨팰 뿐 아니라, 너른터(운동장)나 골마루에 한나절 손을 들고 서도록 내몰아요.


  신문종이는 걸레로도 씁니다. 헌천으로 삼는 걸레 못지않게 신문종이는 물을 잘 빨아들이고, 쉬 마릅니다. 신문종이로 물을 훔쳐서 빨랫줄에 널어 말리고 또 씁니다. 옷칸에 신문종이를 넣으면 좀이 안 먹으면서 옷에 처음부터 깃들던 화학약품 냄새가 빠질 뿐 아니라, 곰팡이가 안 배요. 다만, 해마다 갈아 주면 좋습니다. 푸줏간에서 고기를 살 적에 싸 주는 신문종이도 빨랫줄에 며칠 널어 햇볕을 쪼여 핏냄새를 뺀 다음 쓰지요.


  《나의 종이들》을 쓰신 분은 어버이 곁에서 이런 여러 살림을 그리 눈여겨보지 않은 듯싶습니다. 글쓴이는 어릴 적에 이런저런 종이에 ‘갖고 싶은 것 그리기’는 했으나, 이 숱한 종이를 어버이가 어떻게 쓰는가를 덜 보았구나 싶어요. 참말로 지난날에는 종이 한 자락이 드물고 비쌌어요. 그림종이(도화지) 하나조차 못 사는 가난한 동무가 많았습니다. 1982년에 하얀 그림종이 한 자락을 20원에 팔았는데, 그무렵 어린이 버스삯은 60원이었습니다. 그림종이는커녕 물감이 없고 글붓(연필) 한 자루 제대로 못 쓰는 동무도 많았습니다.


  《나의 종이들》 첫머리에는 갖가지 종이하고 얽힌 글쓴이 삶을 드러낼 듯이 적었으나, 막상 몇 가지 종이를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글에 너무 힘이 들어갑니다. 일부러 어려운 말(일본말씨 + 일본 한자말 + 옮김말씨)을 자꾸 끼워넣습니다. 오늘날에는 종이라는 살림이 매우 흔하고 값싸다지만, 지난날에는 흰종이를 섣불리 다치거나 건드리지 못 했습니다. 좀 비싸기는 해도 ‘비닐자루 주전부리’가 아닌 ‘종이꿰미 주전부리’를 장만한 날이면, 이 종이꿰미를 살살 펴서 뒷종이로 삼는다든지, 기름이 튀는 밥을 지을 적에 꼬박꼬박 썼고, 냄비받침으로도 쓰고, 바람이 새는 미닫이도 막다가, 아주 헐면 그제서야 헌종이로 내놓았습니다.


  저는 오른손잡이로 태어났어도 왼손쓰기를 오래도록 갈고닦았습니다. 오른손잡이로 태어났기에 왼손쓰기를 다 안 한다고 섣불리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집안일을 하는 사람은 왼손이건 오른손이건 다치게 마련이에요. 우리 어머니도 오른손이 다치면 왼손으로 도마질을 했어요. 살림을 하는 사람은 으레 ‘두손잡이’입니다. 뜻깊게 나온 ‘종이 이야기’ 책이기는 하지만, 이다음에 글을 더 쓰려 한다면, 눈을 낮추고 매무새를 나무 곁에 놓고서, 쉬운 우리말결로 추스르시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종이는 나의 환상을 조금이나마 실현해 줬다. 갖고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종이 위에 그렸고, 그 바람은 읽은 부모님은 나에게 종종 그것들을 선물로 줬다. (24∼25쪽)


보통의 오른손잡이로 태어난 사람은 양손을 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왼손잡이로 태어난 사람 중 일부가 오른손 쓰는 연습을 한다. 남들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45쪽)


결국 어떤 글짓기 대회에서든 주최 측 입맛에 맞게 쓰는 일이 중요했다. (54쪽)


부모님께 신문지는 다양한 면에서 만족도가 높은 귀한 사물이었다. 어머니는 주방에서 신문지를 여러 용도로 활용했다. 시금치, 당근, 부추, 대파 등 흙이 묻어 있는 채소를 신문지에 싸서 말고, 씻지도 않은 채 냉장실에 넣어뒀다. (173쪽)


오랫동안 한 곳에서 사업장을 운영해 온 아버지에게 폐지 줍는 할머니는 이웃이었다. (19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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