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웅진 아동 문고 (2022.5.10.)

― 서울 〈숨어있는 책〉



  모든 발걸음은 오늘을 새롭게 이루어 주는 살림길이지 싶어요. 하나하나 겪으면서 스스로 새록새록 느끼고 보고 배우고, 다음 걸음을 바꾸어 내니까요. 모든 말글은 하루를 새롭게 밝히는 마음길이지 싶어요. 한 마디 한 줄을 혀에 얹거나 눈으로 담으면서 문득문득 알아차리고 헤아리고 꿈을 그리거든요.


  뜻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반갑게 찾아드는 살림(세간)이 있구나 싶습니다. 뜻을 미처 세우지 못 했다면 이제부터 차곡차곡 가다듬으면서 느긋이 나아갈 노릇이라고 여겨요. 아이들은 소꿉을 놀면서 천천히 받아들입니다. 어른이라면 곁에서 심부름을 하거나 거들면서 어깨너머로 가만히 맞아들여요.


  서두르지 않으면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서두르면 누구라도 못 봅니다. 느긋하지 않으면 언제나 못 보지만, 느긋하면 언제라도 낱낱이 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책집마실을 자주 다니지는 못 하나, 틈틈이 찾아가서 한가득 장만해 놓은 책을 봄바람 머금듯 한갓지게 폅니다.


  서울 〈숨어있는 책〉에 ‘웅진 아동 문고’가 꾸러미로 들어왔습니다. 온짝은 아니고, 그동안 읽고 건사한 책도 있으나, 꾸러미를 고스란히 장만합니다. 웅진출판사는 이 ‘어린이 작은책’을 오래 선보이지는 않았지만, 여러모로 뜻깊어요. 주머니가 가벼워도 장만할 수 있도록 헤아린 꾸러미요, 어린이 손아귀에 쏙 들어와 가볍게 들고다닐 만하기도 합니다.


  요즈음 적잖은 펴냄터는 어린이책마저 ‘겉갈이(러커버)’를 해댈 뿐, 막상 가볍고 값싼 판으로 널리 읽을 판을 선보이지 않습니다. 펴냄터마다 ‘가볍고 값싸게 내면 오히려 안 산다’고 말하지만, ‘후줄근한 작은책’이 아닌 ‘정갈하며 알차면서 고운 작은책’을 내려고 마음쓴 일은 없다고 느껴요. 이웃나라 일본에서 내놓는 작은책은 글씨가 작아도 읽기에 좋고 매우 가볍고 값싸지만, 짜임새가 단단하고 곱게 여밉니다.


  흔히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 하고 말하는 듯싶습니다만, ‘사람들이 책을 즐겨읽도록 온갖 책을 알차게 내’야지요. 자꾸 ‘작은책은 안 사더라’ 하고 말하는 듯싶은데, ‘사람들이 건사해서 물려주고프도록 엮음새를 바꾸고 가꿔’야지요.


  토를 달거나 핑계를 대기는 쉬워요. 타박하는 말을 고개숙여 듣기는 어려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책마을을 살찌우려면 고인물로는 안 됩니다. 잘난책(베스트셀러)으로도 안 됩니다. 큰 펴냄터로도 안 됩니다. 더 작고 더 낮고 더 깊이 스며들면서, 오히려 서울을 벗어나 시골이며 들숲바다를 품는 길로 나아가야 거듭납니다.


ㅅㄴㄹ


《아기붕어와 해나라》(이원수, 웅진출판주식회사, 1985.3.31.)

《광부 아저씨와 꽃게》(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1985.3.31.)

《애국자 다바코》(송재찬, 웅진출판주식회사, 1985.9.15.)

《은하수에 가지 않은 까치》(박홍근, 웅진출판주식회사, 1985.5.15.)

《담쟁이가 뻗어 나가는 쪽》(손춘익, 웅진출판주식회사, 1985.3.31.)

《불조심 할아버지》(신송민, 웅진출판주식회사, 1985.7.30.)

《봉황리 아이들》(윤기현, 웅진출판주식회사, 1985.3.31.)

《인디언 이야기》(김정환 옮김, 웅진출판주식회사, 1985.3.31.)

《점복이 도련님》(정휘창, 웅진출판주식회사, 1985.7.30.)

《꽃으로 성을 쌓은 나라》(김병규, 웅진출판주식회사, 1985.9.15.)

《까치고동 목걸이》(손동인, 웅진출판주식회사, 1985.4.30.)

《열 두 대문》(윤석중, 웅진출판주식회사, 1985.3.31.)

《큰 바위와 산새》(배익천, 웅진출판주식회사, 1985.5.15.)

《아기도깨비 루루의 모험》(이현주, 웅진출판주식회사, 1985.5.15.)

《태백산 품 속에서》(김녹촌, 웅진출판주식회사, 1985.5.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