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46 시늉



  모두 받아들여서 나아가는 길이 가장 느린 듯하지만 가장 빠릅니다. 그런데 모두 똑같이 맞추라고 억누른다면 가장 빠른 길이 아니라 가장 어리석은 길입니다. 모두 받아들이지는 않으나 더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는 길로 나아가려 할 적에는 다툼질이 잇따르고 오락가락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길(다수결)’로 틀을 잡을 적에는 언제나 ‘기꺼이 받아들이기(승복)’를 바탕으로 깝니다. 기꺼이 받아들일 줄 모른다면, 우리가 졌을 때뿐 아니라 우리가 이겼을 때에 저쪽에서 딴죽을 걸어도 된다는 뜻이에요. 오늘날 우리나라는 겉으로 ‘민주주의’란 이름이지만, 속으로는 ‘끝없는 쌈박질·딴죽질’입니다. 딱 하나만 옳은길로 삼으려 하되 모두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찬찬히 기다리지 않아요. 딱 하나 옳은길을 서둘러 따르라고 억누르는 얼개입니다. 누가 나라지기로 뽑히더라도 함께 아름다이 어우러지며 어깨동무로 노래하고 사랑할 길을 이야기할 노릇입니다. ‘꼭 내가 거머쥐어야 한다’거나 ‘넌 거머쥐어서는 안 돼’ 하고 가른다면, ‘시늉만 민주주의인 독재·독선’입니다. 틀이나 이름이나 우두머리는 대수롭지 않아요. 우리 스스로 슬기로우면서 착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레 이 삶을 저마다 다른 숨결로 가꿀 노릇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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