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노래 . 숲노래 마음노래

텃밭



알고 보면, 너희는 밭짓기를 안 하면서 넉넉하고 느긋하게 살아갈 수 있단다. 모든 들숲바다에서 철을 따라 돋는 잎을 누리고, 꽃을 누리고, 열매를 누리면 돼. 들숲바다에서 흐르는 숨결을 가만히 그때그때 받아들이면, 너희한테 아무런 걱정도 아픔도 괴로움도 멍울도 짜증도 없어. 너희가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 때문에 아프거나 괴롭다면, 철 따라 새롭게 흐르는 숨결을 안 누리는 탓이야. 새가 나무를 심니? 새는 열매를 먹고서 똥을 눌 뿐인데, ‘똥을 붙잡은 씨앗’이 흙으로 깃들어서 나무가 자란단다. 게다가 새는 열매를 쪼다가 으레 떨어뜨리지. 이렇게 떨어뜨린 열매에 있는 씨앗이 또 나무로 자라. 겨울에 먹을거리가 없어 걱정이니? 해를 먹고 물을 먹으면 돼. 겨울잠을 깊이 들어도 되고. 나비가 된 애벌레도 그저 잎을 기꺼이 스스럼없이 누릴 뿐인데 그토록 토실토실하게 살다가 나비로 거듭나지. 나비로 거듭나면 꿀하고 꽃가루 조금으로도 배가 불러. 너희는 알까? 몇 그릇씩 비워야 밥먹기이지 않아. 민들레잎 하나로 배부를 수 있어. 꽃송이를 바라보며 냄새만 맡아도 배부를 만하지. 마음이 사랑은 사람은 많이 안 먹어. 마음에 사랑이 없으니 자꾸 먹고 많이 먹지. 맵고 짜고 달게 먹는 버릇은 몸을 괴롭히는 짓이지. ‘맛있게 먹기’는 안 나빠. 다만 ‘밥맛내기’에 기운을 쓰는 만큼 ‘네 꿈그림’을 잊거나 등지기 쉽단다. 아무튼 텃밭짓기를 하고 싶으면, 마음에 드는 씨앗을 듬성듬성 심고서 날마다 이 곁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이야기판을 펴렴. 2022.10.19.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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