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새랑 걷는 골목 (2022.8.7.)
― 수원 〈탐조책방〉
어릴 적에는 “사람들 누구나 놀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새벽부터 밤까지 쉬잖고 일하고 살림하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어머니는 언제 쉬고 언제 놀아요?” 하고 여쭈면 “에그, 언제 쉬냐고? 죽을 때 쉬겠지! 언제 노냐고? 너나 놀 수 있을 때 잘 놀아라.” 하셨습니다. 스무 살에 열린배움터(대학교)를 그만둘 적에는 “사람들 누구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왜 책을 읽어야 해?” 하고 묻는 이웃들한테 “종이책만 읽으란 소리가 아니에요. 하늘책·바람책·숲책·풀꽃나무책, 그러니까 마음책·숨결책·사랑책을 읽으란 소리입니다.” 하고 대꾸했어요.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끝내고 인천으로 돌아가서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연 2007년에는 “사람들 누구나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부릉이(자동차)를 몰면 수월하고 빠른데 왜 걸어?” 하고 묻는 분한테 “빨리 달리고 싶으면 빨리 죽으면 되겠네요? 왜 아직까지 빨리 안 죽으셔요? 천천히 걸어야 오래오래 삶을 사랑하는 눈길을 스스로 익힙니다.” 하고 대꾸했어요.
인천을 다시 떠나 전남 고흥 시골에서 살아가며 “숲을 품고 아이를 사랑으로 낳고, 곁님을 마음으로 어깨동무하고, 누구나 노래를 쓸 노릇이다” 하고 생각합니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노래를 쓰고 부르고 짓고 나누었어요. 글도 책도 모르는 모든 흙사람(시골사람·여름지기)은 손수 집밥옷이란 살림을 짓고, 말(사투리)도 손수 짓고, 아이도 손수 다 가르쳤어요. 이러면서 늘 노래를 불렀지요.
모를 심어도 밭일을 해도 아기를 재워도 길쌈을 해도 베틀을 밟아도 노래입니다. 시집살이노래마저 있을 만큼, 늘 노래였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노래가 없습니다. ‘대중가요·팝’은 있어도 스스로 노래를 안 짓더군요.
수원 〈탐조책방〉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드디어 때가 맞아 ‘새사랑 마을책집’을 온몸으로 누립니다. 수원나루부터 골목집 사이를 천천히 거닐면서 들꽃빛을 물씬 느꼈습니다. 〈탐조책방〉으로 책마실을 가려는 분은 이 길을 걷기를 바라요.
밝게 노래하는 책을 그득 품고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합니다. 알고 보면, 우두머리(대통령)란 자리는 ‘벼슬아치(공무원)’입니다. 벼슬아치를 갈아치운다고 나라가 바로서지 않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살림꾼인 줄 즐겁게 깨달으면서, 순이돌이가 어깨를 겯고 사랑으로 집살림을 돌볼 줄 알아야 나라가 바로섭니다.
이제는 벼슬아치를 줄여야지 싶어요. 낛(세금)을 조금만 거둬야지 싶어요. 집안일·집살림을 모르는 사람은 벼슬아치를 시키지 말 노릇이에요. 손빨래를 할 줄 알고 아이를 사랑으로 돌본 사람만 벼슬자리를 받아서 일을 해야 아름나라입니다.
ㅅㄴㄹ
《야생조류 필드 가이드》(박종길, 자연과생태, 2022.3.31.)
《올빼미와 부엉이》(맷 슈얼/최은영 옮김, 클, 2019.4.22.)
《자연 수업》(페터 볼레벤/고기탁 옮김, 해리북스, 2020.10.3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