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거처 창비시선 100
김남주 지음 / 창비 / 199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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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숲노래 시읽기 2022.10.21.

노래책시렁 239


《사상의 거처》

 김남주

 창작과비평사

 1991.11.25.



  요새 ‘김남주’라는 노래님을 곁에 두는 분이 드문 듯싶습니다. 떠난 지 제법 된 노래님을 굳이 떠올릴 까닭이 없을 수 있으나, “김남주 안 읽기”에는 여러 속뜻이 흐릅니다. 이를테면 ‘리얼리스트’란 영어를 읊는 글바치(지식인)가 많은데, 그들 가운데 누가 잿빛집(아파트) 아닌 오르막길 작은 골목집에 깃들어 하루를 보낼까요? ‘다큐멘터리 작품을 만들’려고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는 리얼리스트는 많습니다만, 정작 스스로 가난한 살림을 꾸리는 이는 드물어요. ‘안 가난한 사람이 만드는 다큐멘터리 작품’은 ‘가난한 살림살이’를 얼마나 제대로 그릴까요? 《사상의 거처》에 〈똥파리와 인간〉이라는 대단한 노래 한 자락이 실렸습니다. 안치환 님이 가락을 입히기도 한 노래입니다. “똥 없이 맑고 깨끗한 데”에서 살거나 “돈 없이 가난하고 한적한 데”에 가서 살림하지 않고서야, 함부로 붓을 쥐지 말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멸찬(부자) 살림이기에 글을 안 써야 하지 않아요. 가멸찬 살림이라면 가멸찬 그대로 쓰면 되는데, ‘가멸찬 주제’에 ‘가난한 흉내’를 내니, 이 나라는 온통 거짓글판입니다. 가멸차기에 창피하지 않아요. 꾸미거나 거짓말을 하기에 창피합니다. “생각이 있는 곳(사상의 거처)”을 볼 노릇입니다.


ㅅㄴㄹ


바닷가가 처음이라는 내 친구는 / 낙조의 파도에 사로잡혀 몸둘 바를 모르고 / 농부의 자식인 내 가슴은 제방 이쪽 / 가뭄에 오그라든 나락잎에서 애를 태운다 // 뿌리가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다른 / 가난한 시대의 가엾은 리얼리스트 / 나는 어쩔 수 없는 놈인가 구차한 삶을 떠나 / 밤별이 곱다고 노래할 수 없는 놈인가 (가엾은 리얼리스트/16쪽)


인간은 돈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 무리지어 웅성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 범죄의 소굴이건 아비규환의 생지옥이건 상관 않고 // 보라고 똥 없이 맑고 깨끗한 데에 가서 / 이를테면 산골짜기 옹달샘 같은 데라도 가서 /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떼지어 사는 똥파리를 // 보라고 돈 없이 가난하고 한적한 데에 가서 / 이를테면 두메산골 외딴 마을 깊은 데라도 가서 /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무리지어 사는 인간을 (똥파리와 인간/10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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