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라 돼지 문학과지성 시인선 480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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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숲노래 시읽기 2022.10.21.

노래책시렁 248


《피어라 돼지》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2016.3.3.



  허물을 벗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어렵다고 여기는 둘레 마음을 스스로 받아들이니까, 스스로 어려운 척입니다. 고치에 들어가면 깨어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고치에 깃들어 잠드는 까닭은 모든 옛모습을 고스란히 내려놓고서 나비로 태어나려는 꿈인 터라, 잘 했건 못 했건 다 놓아야 하는데 그만 안 놓으려 하니 나비로 못 깨어날 뿐입니다. 남이 불러 주는 이름에 젖으면 스스로 지을 이름을 잊습니다. 치켜세우거나 깎아내리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남이 내 삶을 누리지 않아요. 내가 남 삶을 즐기지 않아요. 나는 오로지 나인 줄 느끼고 알면 됩니다. 《피어라 돼지》는 스스럼없이 터뜨리는 말과 숨결과 목소리와 발걸음이 환하게 드러납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숨결을 드러내며 목소리를 밝히고 뚜벅뚜벅 걸어갈 줄 아는 노래님이 우리나라에 있구나 싶어 놀랍습니다. 다만, 아직 바깥(사회·문단·언론·독자)에 얽매이는구나 싶어요. 굳이 바깥을 쳐다보면서 목소리를 내거나 움직여야 하지 않아요. 입방아를 찧건 말밥에 올리건 왜 쳐다봐야 할까요? 글밭(문단)에 기웃거리거나 달책(문학잡지)에 글을 실어야 노래님일 수 없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오늘을 노래하는 사람이기에 노래님입니다. ‘시인’이 아니라면 누구나 ‘노래’를 합니다.


ㅅㄴㄹ


사실 이 나이의 여자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 우리나라에선 죄를 짓는 일과 같습니다 / 수박에게나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 사랑이라고 하는 세상의 저속을 생각해봅니다 (수박은 파도의 기억에 잠겨/79쪽)


적어주는 대로 읽어대는 코리안 앵커처럼 / 이해도 피해도 없는 종잇장에 박힌 평평한 말씀 …… 울며불며 애원해도 척결! 척결! / 모릅니다, 제 소관이 아닙니다 /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라고 외치는 걸 가장 좋아하는 / 국어사전 고양이가 펼쳐주는 납작한 말씀 (국어사전 아스퍼거 고양이/19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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