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나, 요즘 사람들한테 추천할 만한 책이 있으면 한 가지 이야기해 주셔요.” 하고 묻는 분이 곧잘 있습니다. 이런 물음에는 으레 싱긋 한 번 웃은 뒤, “하나도 없네요.” 하거나 “하나도 생각 안 나요.” 하거나 “글쎄요.” 하고 대꾸합니다. 제 대꾸를 듣는 분들은 저으기 놀라실까요. 저로서는 ‘좋은 책 하나 골라서 소개해 달라’는 물음이 참참참 어렵고 답답하답니다. 세상에 우리 마음과 삶을 가꾸고 살릴 수 있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많은 책을 스스로 하나하나 찾아서 읽을 생각은 못하며 ‘자기 몸은 안 움직이고 대신 움직여 달라’니요. 배고픈 사람이 스스로 쌀을 일고 씻고 안쳐서 밥을 해 먹어야 하듯이, 마음고픈 사람이 스스로 돈을 모아(일을 해서) 책방 나들이를 떠난 다음 책꽂이와 책시렁을 차근차근 둘러보며 마음에 밥이 될 책을 찾아서 사 읽어야 된다고 느껴요.

 그렇지만 제 까칠한 대꾸를 들으면서도 “그래도 여태껏 책 많이 읽으셨을 텐데, 한 권쯤 기억나는 책이 있지 않아요?” 물으시면, 제 가방에 있거나 책상에 올려진 책을 슬쩍 보면서 이야기합니다. 제 책상머리 책이 언제나 그때로서는 하느님이거든요. 오늘은 제 책상에 《후지무라 미치오-청일전쟁》(소화,1997)이 올려져 있습니다. 청일전쟁이 일본 사회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어떻게 영향을 끼쳐서 오늘날에 이르는가를 살핀 조그마한 논문.

 그러고 보면, 우리들은 날마다 밥을 먹고 반찬을 먹지만, 몸소 논밭을 일구어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사람이 몹시 드뭅니다. 몸소 논밭 가꾸기를 안 하고 사서 먹는다고 해도, 쌀과 푸성귀와 물고기와 뭍고기 들을 손수 다듬고 익혀서 먹는 사람조차 퍽 드뭅니다. 부모님과 사는 분들은 어머님이, 혼인해서 사는 분들은 여자 쪽에서 밥상을 차립니다. 더구나 나날이 바깥밥 사먹는 분이 늘고 스스로 밥상을 차리는 사람조차 줄어요. 피자며 통닭이며 짜장면이며 국수며 돈까스며 …… 전화 한 통에 뾰로롱 달려와 갖다 바칩니다. 먹고 남은 것은 주마다 쓰레기차가 와서 거두어 갑니다. 형편이 이러하다 보니, 몸을 가꾸는 밥을 제 스스로 제 몸을 살피며 알뜰히 마련하는 문화란 사라지거나 옅어져요. 그래, 몸을 제 스스로 가꾸지 못하는 삶이다 보니까, 제 몸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느끼지 못하는 삶이다 보니까, 제 마음이 어떤지 헤아릴 수 있는 사람도 줄겠지요. 제 마음을 느끼고 살피면서 가꾸려고 하는 사람도 줄고요. 제 마음을 사랑하고 돌보며 고이 껴안는 가운데 이웃사람 마음을 따스하거나 넉넉한 품으로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 또한 자취를 감추지 싶습니다. 이런 세상이라면, 두 다리를 움직여 찾아가는 책방 문화란 발붙일 수 없구나 싶고, 인터넷으로 목록 죽 뒤져서 주문하는 경제논리만, 두고두고 읽는 책이 아니라 그때그때 유행 따라 읽어치우는 책만 잘 살아남고 두루 사랑받겠습니다. (4340.7.11.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