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지음돌이 (2021.12.6.)

― 대전 〈이데·월간 토마토〉



  어느 날 문득 둘레를 보니, 돌이는 집에서는 밥을 안 하기 일쑤요, 바깥에서는 밥을 도맡아 짓더군요. ‘집에서 밥짓는 돌이’는 드물고, ‘밥집에서 요리사나 셰프란 이름으로 밥짓는 돌이’가 넘쳐요. 아리송했어요. 다들 입으로는 “집밥이 맛있다”고 하면서, 정작 순이 가운데 ‘요리사·셰프’는 적고, 순이가 이런 이름을 받기는 까다롭거나 버거워 보여요. 이와 달리 집밖에서 이름을 드날리는 밥돌이는 많되, 막상 집살림을 맡는 살림돌이는 드무니까요.


  밥짓기는 예부터 가시버시가 함께하던 살림입니다. 한쪽이 도맡는 일이 아닙니다. 옷짓기하고 집짓기도 가시버시가 함께하던 살림이에요. 이제 숱한 돌이는 밥짓기뿐 아니라 살림돌이란 자리를 버렸는데, ‘집을 버리고 바깥에서 이름을 얻거나 돈을 벌거나 힘을 누리려 하면서 온나라가 망가지는구나’ 싶습니다. 우리는 바깥살이(사회생활)를 잘 해내야 할 사람이 아닌, 집살림을 슬기롭게 맡으면서 어질게 다스려야 할 사람이지 않을까요?


  집을 떠나 바깥에서 엉뚱한 데에다가 넋을 팔면서 그만 집살림하고 밥짓기를 잊었구나 싶어요. 순이는 돌이한테 집살림하고 밥짓기를 시켜서, 돌이가 스스로 잊거나 잃은 살림빛을 키워 줄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돌이는 순이한테서 고분고분 말을 듣고서 집안일을 함께 돌보고 집살림을 같이 가꾸는 길을 가야, 서로 사랑으로 피어나는 보금자리를 일구리라 생각합니다.


  대전에서 마을책(지역잡지)을 내는 ‘월간 토마토’가 있고, 이곳에서 꾸리는 책쉼터이자 마을책집이라 할 〈이데〉가 있습니다. 앞서 〈다다르다〉하고 〈중도서점〉을 들르면서 책짐이 가득합니다. ‘월간 토마토’ 일꾼을 만나서 가벼이 수다꽃을 즐기면서, 이 포근한 쉼터를 품은 대전이라는 고을을 헤아려 봅니다.


  책 곁에 가만히 깃들어 마음에 씨앗 한 톨을 심는 꿈이 있으니, 이 꿈이 마을마다 새록새록 자라납니다. 천천히 온누리를 푸르게 가꾸는 밑빛으로 퍼지는 마음이 새록새록 깨어납니다.


  마음을 틔우는 사람은 늘 노래를 들어요. 한겨울에는 풀벌레노래가 없어도 텃새노래가 있고, 바람노래가 있습니다. 더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면 햇살이 퍼지는 소리를 느낄 테고, 별빛이 내려앉는 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생각이 한뼘 자라는 사람들이 새롭게 책빛을 일구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사랑을 포근하게 나누는 사람들이 마을빛을 싱그러이 보듬기를 바랍니다. 지음돌이하고 지음순이가 어깨동무하면서 활짝 웃고 노래할 지음길을 그립니다.


ㅅㄴㄹ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야》(이승미, 월간 토마토, 2021.4.26.)

《월간 토마토 173》(이용원 엮음, 월간 토마토, 2021.12.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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