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10.7.
수다꽃, 내멋대로 27 연휴
푸른배움터에 들어간 1988년부터 ‘쉬는날(연휴)’이 없었다. 1988∼1990년 사이에는 06시부터 22시까지 배움터에 갇힌 나날이라면, 1991∼1993년 사이에는 05시부터 23시까지 배움터에 갇힌 나날이었다. 1994년 한 해는 인천·서울 사이를 날마다 오가면서 숱한 사람들을 만나고서 책집마실을 다녔고, 1995년에는 열린배움터(대학교)를 더는 다니지 않기로 하면서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하루를 열고서 짐자전거로 헌책집 나들이를 다니고, 책숲·책집(대학도서관·대학구내서점)에서 곁일을 하면서 ‘이레 가운데 하루는커녕 하루 어느 때도 쉬잖고’ 일하고 배우며 살았다. 1995년 11월 6일에 싸움터(군대)에 끌려가서 1997년 12월 31일에 비로소 풀려날 때까지 그 싸움터에서 쉬는날이란 없었고, 다시 새뜸나름이로 일하다가 펴냄터(출판사) 일꾼으로 들어가는 1998∼2000년에도 쉬는날이 없었다. 《보리 국어사전》 엮음빛(편집장)으로 일하던 2001∼2003년에도,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을 갈무리하던 2003∼2007년에도, 인천 배다리에서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연 2007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두 아이를 낳아 돌보는 모든 나날을 아울러도, 나는 열네 살부터 하루조차 쉬는날을 두지 않았다. 둘레에서 “무슨무슨 연휴”라고 말하면 성가시다. “개천절 연휴”라든지 “한글날 연휴”라고 하면 살짝 어리둥절하다. ‘하늘을 연 날’을 우리 스스로 돌아보는 자리가 없이 놀러다닌다는 뜻이자, ‘말글길을 연 날’을 우리 스스로 잊으면서 노닥거린다는 뜻이니까. 배우지 않는 하루라면 죽음길이다. ‘배움 = 학교 다니기’일 수 없다. ‘배움 = 삶을 이루는 사랑을 스스로 알아차려서 슬기롭고 즐겁게 살림을 짓는 생각을 마음에 씨앗으로 심도록 모든 숨결을 받아들이기’이다. 둘레 사람들이 ‘쉬는날 없이 살아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쉬는날 없이 살지만, 누구나 느긋이 쉬는날을 누릴 노릇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나라에서 떠드는 “한글날 연휴”를 보라. ‘서울내기가 갑갑한 잿터(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푸른바람을 마시고 맛밥을 먹으려고 돈을 쓰는 며칠’을 읊지 않는가? “한글날 연휴”는 누가 누리는가? ‘공무원 아닌 일하는 사람’ 가운데 누가 쉬는날을 누리는가? ‘살림꾼(가정주부)’은 쉬는날을 누리는가? 시골사람은 쉬는날을 누리는가? 시골에서 흙살림을 짓는 사람한테 해날(일요일)이 있는가?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한테 쉬는날이 하루는커녕 한나절이라도 있는가? 2022년 10월 6일 낮에 서울에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를 타는데 빈자리가 없다. 아이들을 이끌고서 할머니·할아버지·이모·이모부·사촌동생을 만나러 경기 일산에 갔다가 전남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골사람은 쉬는날(연휴)이 끼면 고단하다. 쉬는날에는 ‘시골로 가는 길’에 빈자리가 없으니까. 나는 1995∼2004년 사이에 서울에서 살며 날마다 책집을 두서너 곳씩 다녔는데, 그무렵에는 흙날(토요일)·해날(일요일)에 쉬는 책집이 아예 없다시피 했고, 한 해에 하루조차 안 쉬는 책집이 참 많았다. 2022년 무렵에 이르면 이제는 ‘쉬는날 없이 여는 책집이 아예 없다’고 할 만하다. 지난날 여러 책집에서 “사장님은 쉬는날이 없으면 힘드시지 않아요?” “쉰다고 집에 있으면 더 힘들어요. 책집사람은 책집에 앉아서 책을 보며 햇볕을 느긋하게 쬐는 일이 쉬는 셈이에요.” 같은 말을 으레 주고받았다. 한 해 내내 쉬잖고 일해야 하는 어머니하고 “어머니 오늘은 좀 쉬시지요?” “아이고, 그럼 이 많은 일을 누가 하니?” 같은 말을 늘 주고받았다. 풀꽃나무한테는 쉬는날이 없다. 바람도 해도 별도 바다도 쉬는날이 없다. 쉬는날은 뭘까? 제대로 느긋하면서 즐거이 쉬는 길이란 뭘까? 돈을 들여 서울(도시)을 벗어나는 하루가 쉬는날일까? 서울에 눌러앉는 삶이야말로 참다운 쉼을 잊고 아름다운 일을 잃으며 즐거운 놀이하고 등진 채 사람다운 사랑을 스스로 버리는 길은 아닐까? 아기한테도 아이한테도 쉬는날이 따로 없다. 어른이란 몸을 입은 ‘사회인’이란 자리에 서면 일놀이뿐 아니라 모든 숨빛을 스스로 내팽개치는 굴레라고 느낀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