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 -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의 기록
장화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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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0.4.

인문책시렁 239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

 장화와 열 사람

 글항아리

 2021.9.3.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장화와 열 사람, 글항아리, 2021)는 책이름 그대로 두 마음이자 두 삶을 걸어온 사람들이 갈무리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책에서 목소리를 낸 열 사람은 열 가지로 다르게 피멍이 맺혔습니다. 피멍을 낸 이들은 한집에서 살아왔습니다. 바깥에서 가싯길을 걷거나 피멍이 맺힌 이를 품을 곳이 보금자리일 텐데, 거꾸로 집이란 곳이 보금자리 구실을 못 했다지요.


  왜 주먹부터 휘두를까요. 왜 아랫도리를 응큼하게 노릴까요. 어릴 적부터 집에서 어버이하고 한또래는 무엇을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삶인가요. 집이 헝클어졌다면, 마을하고 배움터는 사람들을 붙잡아 주거나 이끄는 몫을 할 수 없는가요.


  제가 나고자란 인천에서도, 오늘 살아가는 전남 고흥에서도, 둘레를 보면 노닥술집(유흥주점)이 끔찍하도록 많습니다. 시골 면소재지조차 노닥술집이 있고, 흥청망청입니다. 술 한 모금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만, 왜 나눔술이 아닌 노닥술이어야 할까요? 왜 숱한 사내하고 벼슬꾼하고 돈바치는 어디에서 돈이 쏟아지기에 노닥술집에서 흥청망청일 수 있을까요?


  사랑으로 살림을 지어 삶을 나누는 길을 본 적도 배운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들은 돌이순이를 안 가리고서 아랫도리를 괴롭히거나 짓밟는다고 느낍니다. 둘레를 봐요. 돌이만 우글거리는 푸른배움터는 몹시 사납습니다. 순이돌이가 함께 다니는 푸른배움터도 나날이 사납빼기로 물듭니다. 어린배움터마저 참 빠르게 사납게 뒹구는 길입니다.


  옳고그름을 가리기 앞서, ‘삶·살림·사랑’부터 차분히 돌아보고 이야기하며 그릴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배움터에 밀어넣기 앞서, 왜 배우고 무엇을 가르치는지 짚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암꽃하고 수꽃이 없으면 씨앗도 열매도 맺을 수 없는 풀꽃나무입니다. 순이하고 돌이가 없으면 사람이란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어느 길을 가야 할까요? 10월 1일을 ‘국군날’이라 하면서, 무시무시한 총칼을 희번덕일 뿐 아니라, 칼이랑 몽둥이를 쥐고서 저놈(적군)을 날렵하게 죽이거나 때려눕히는 짓을 ‘무술시범’이랍시고 아이들한테 버젓이 보여주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영화·연속극’ 가운데 순이돌이가 서로 사랑으로 아끼면서 새롭게 짓는 보금자리를 수수하게 들려준 적은 얼마나 될까요?


  피멍이 맺히는 까닭은 한둘이 아닙니다. 숱한 바보짓이 얼크러지면서 불거집니다. 언제나 오늘이 사랑할 때입니다. ‘살섞기’가 아닌 사랑을 할 때입니다. 그리고 순이 못지않게 돌이도 숱하게 노리개질(성폭력)을 받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싸움터(군대)에 이르기까지, 또 일터(회사)에서마저 숱한 돌이도 노리개질에 시달리는데, 순이 곁에서 돌이도 목소리를 함께 내어 이 썩어빠진 나라와 틀거리를 이제부터 뜯어고칠 수 있기를 빕니다.


ㅅㄴㄹ


다수의 사람이 내 경험을 불편하게 여기는 일은 내가 나를 ‘정상’이 아니라고 여기게 만들었다. (23쪽)


긴 침묵 끝에 내놓은 엄마의 답변은 정말 최악이었다. “그래도 가족인데 어떻게 하겠니?” (34쪽)


나는 아빠가 내가 어려을 때 한 짓을 범죄라고 일갈했다. 아빠는 그저 내가 귀여워서 했던 장난이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내 경험은 그저 개인의 문제일까? 사촌 오빠는 내게 왜 그랬을까? 아빠는 나한테 왜 그랬을까? 내 입을 막은 건 무엇이었을까? (46쪽)


처음 나를 강간했던 때 오빠의 나이는 고작 열네 살이었다. (89쪽)


“아빠랑 오빠가 저 성폭행하고 엄마가 아동학대 했어요”라고 말했지만 결국 내가 돌려보내진 곳은 그 가족들이 있는 집이었다. (94쪽)


성매매를 하기까지의 접근 과정이 너무 간단해서 사람들이 성매매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성폭행 가해자들뿐 아니라 방관한 어른들까지 내게는 모두 가해자와 같은 편이나 다름없었다고. (120, 121쪽)


하지만 여전한 의문은, 사회가 왜 이 극악한 범죄자들을 보호하며 피해자인 아이를 그 손에 맡겨놓는 것도 모자라, 아이가 자라서 법에 호소해도 제대로 처단하지 않고 범죄자들이 편안하게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가 하는 점이다. (154쪽)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부끄러워할 때까지, 정말로 죄 있는 사람이 응당한 책임을 다할 때까지, 정말 수치스러워해야 할 사람이 치욕에 떨며 고개를 들지 못할 때까지 나의 말하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19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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