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40 대단하지 않되
책은 높지도 낮지도 않습니다. 사람은 낮지도 높지도 않습니다. 어떠한 일이나 놀이도 낮거나 높을 까닭이 없습니다. 푸른별에서 풀꽃나무가 대수롭다고 할 만합니다만, 풀꽃나무만 대수롭게 바라볼 일은 아니라고 느껴요. 물에서 사는 헤엄이도, 들에서 사는 짐승도, 숲에서 사는 새도 저마다 대수로워요. 책 하나만 놓고서 본다면, 책은 대단하지 않되, 언제나 숲에서 옵니다. 모든 책은 아름드리숲에서 자라던 나무예요. 한낱 종이꾸러미가 아닌, 숲결(숲이라는 결)을 책자락(책이라는 이야기가 흐르는 자락)에서 느끼는 사이에 천천히 눈을 밝히고 마음을 틔우지 싶습니다. 무엇을 얻거나 잘난이가 되려고 손에 쥐는 책이 아닌, 저마다 다르게 숲이라는 숨결을 품은 삶인 줄 가만히 느껴서 푸르게 빛나려고 손에 쥐어 보는 책이지 싶어요. 책을 읽기에 징검다리를 놓습니다. 너랑 나 사이에 새롭게 숨결을 틔우는 이야기를 책 하나로 살며시 잇습니다. 이름난 글님(작가)이나 이름없는 읽님(독자)이 아닌, 수수하게 숲에서 일렁이는 풀꽃나무 같은 너나(글님+읽님)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게 빛납니다.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 즐겁게 깨어납니다. 대단하지 않되, 마음 깊이 흐르는 풀빛을 일깨워 삶빛을 손수 짓도록 속삭이는 책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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