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모임이란 (2022.7.18.)

― 부천 〈용서점〉



  1994년은 한 해 내내 전철로 인천하고 서울을 오가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무렵 새벽 서너 시 무렵이면 짐을 꾸리고서 하루 글쓰기를 합니다. 다섯 시 사십 분 즈음 집을 나와 첫 마을버스를 타고서 주안역에 가고, 새벽 여섯 시 십 분 전철을 탑니다. 전철나루에 더 일찍 가고 싶어도 첫 마을버스가 늦습니다. 이때부터 불수레(지옥철)에 시달리다가 아침 여덟 시 이십 분 즈음 외대앞역에서 내려요. 아홉 시부터 이야기(수업)를 들으려면 등골이 휩니다. 거꾸로 저녁 여덟 시 사십오 분 전철까지는 타야 인천집에 밤 열한 시 십오 분 마지막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갑니다.


  서울에서 사는 또래나 윗내기는 “야, 넌 왜 이리 집에 일찍 가니?” 하고 묻지만, 저녁 아홉 시가 넘어서 전철을 타면 집에 못 갑니다. 아니, 인천 가는 마지막 전철은 밤 열한 시 즈음까지 있다지만, 저녁 아홉 시를 넘은 뒤에 전철을 타면 인천에서는 마을버스가 끊겨, 주안역부터 밤길을 두 시간 넘게 걸어야 합니다.


  즐겁자고 만나는 모임이라면 어디에서 누가 모이는 어떤 자리를 꾸릴 적에 아름다울까요? 열린배움터(대학교)는 서울사람만 다니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서울 한켠에 삯칸을 얻더라도 ‘우리 집’이 아닌 ‘한때 머무는 빌린 칸’입니다.


  〈서울책보고〉에서 일을 마치고 〈용서점〉으로 전철을 달립니다. 오늘 〈용서점〉에 모인 이웃님하고 ‘모임’을 놓고서 수다꽃을 피웁니다. ‘모임 = 모이다’인데, ‘모’란 무엇일까요? ‘뫃다’에 ‘모두’가 있습니다. ‘여러모로·모내기’가 있고, ‘모시풀·못’하고 ‘목아지·길목’이 있습니다. ‘모습’에 ‘몰다’가 있지요. 비슷하면서 다른 ‘두레’는 ‘둘·두르다·둥글다·두다’로 잇는 말밑이요, ‘울력’은 ‘우리·울타리·한울(하늘)·울다’로 잇는 말밑이며, ‘품앗이’는 ‘품·풀다·풀·푸르다·푸지다·푸짐’으로 잇는 말밑이에요.


  우리는 늘 쓰는 수수한 말씨가 어떤 뿌리인 줄 어느 만큼 생각할까요? 가장 훌륭한 말이라면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마음을 소리로 옮기니 말인걸요. 우리말에서 ‘말’하고 ‘마음’은 말밑(어원)이 같습니다. ‘마음·말’은 ‘맑다·물’하고도 말밑이 같아요.


  알고 보면 빗물은 바닷물입니다. 바다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숲을 품으면 더없이 아름답고 푸른 빗방울이니, 이 빗방울을 마시고 누린다면 우리는 누구나 푸른별에서 푸른사람으로서 푸른마음을 가꾸리라 생각합니다. 밤이 되니 부천에 비가 쏟아집니다. 빗방울을 맞으면서 “넌 어느 바다에서 우리한테 왔니?” 하고 속삭입니다. 함박비는 밤새 잿빛먼지를 차근차근 쓸어내 줍니다.


ㅅㄴㄹ


《돔 헬더 까마라》(조세 드 브루키르/이해찬 옮김, 한길사, 1979.3.1.)

《집으로 가는 길》(홍은전 외, 오월의봄, 2022.4.20.)

《우리 문학과의 만남》(조동일, 홍성사, 1978.9.30.첫/1981.5.10.3벌)

《동물학대의 사회학》(클리프턴 P.플린/조중헌 옮김, 책공장더불어, 2018.8.24.)

《히로시마의 증인들》(존 허시/이부영 옮김, 분도출판사, 1980.8.5.)

《네째 왕의 전설》(에자르트 샤퍼/김윤주 옮김, 분도출판사, 1978.4.1.첫/1979.12.25.2벌)

《한국교회 100년 종합조사연구 보고서》(김용복 외,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82.5.28.)

《발해사》(박시형, 이론과실천, 1989.8.10.첫/1991.7.10.2벌)

《맛의 달인 105》(테츠 카리야 글·하나사키 아키라 그림/장수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1.3.15.)

《맛의 달인 110》(테츠 카리야 글·하나사키 아키라 그림/이청 옮김, 대원씨아이, 2014.4.30.)

《빛으로 담은 세상, 사진》(진동선, 웅진씽크빅, 2007.2.1.)

《나는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편집부, 나눔문화, 2012.3.8.첫벌/2018.9.1414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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