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여름빛은 저물고 (2022.7.18.)
― 서울 〈서울책보고〉
함박비가 오는 이른아침에 두 아이가 배웅을 합니다. 시원스레 쏟아지는 여름비를 보면 천조각을 벗어던지고서 비놀이를 누리다가, 자전거를 달려 골짝마실을 하고 싶습니다. 큰고장(도시)에서 산다면 엄두를 못 낼 비놀이·골짝마실일 텐데, 문득 돌아보니 인천에서 나고자란 어릴 적에도 함박비가 오는 날 부러 비를 맞으며 바깥에서 뛰놀았습니다. 옷을 다 적시면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듣고 구둣주걱으로 엉덩이에 불이 나게 맞았지만, 그래도 비를 맞으며 노는 하루는 싱그러웠어요.
시외버스가 전북을 지날 즈음에는 빗줄기가 그칩니다. 서울에서 내려 움직일 적에는 그냥 걸어도 돼요. 먼저 〈서울책보고〉에 깃들어 느긋이 책시렁을 돌아봅니다. 16시부터 그림(영상)을 담습니다. 7월에는 부산 헌책집 두 곳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 돌아본 책은 집받이(택배)로 보내고서 부천으로 건너갑니다. 천천히 원미동 골목을 걸어 〈용서점〉에 닿았고, 저녁빛을 밝히는 수다꽃을 폅니다.
밤이 되어 길손집을 찾아갈 적에 비로소 비가 펑펑 쏟아집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짐을 풀고 하루를 돌아봅니다. 시골집이 아닌 큰고장 한복판에서도 오늘만큼은 우렁찬 밤비노래입니다. 함박비는 모든 자잘한 잿빛소리를 잠재웁니다.
새하고 풀벌레하고 냇물이 노래하는 파란하늘을 누리지 못 하는 큰고장에서는 어떤 숲마음을 품을 만할까요? 빗방울이랑 바다랑 구름은 늘 한몸인데, 냇물이며 샘물로도 겉몸을 바꾸어 우리 몸에 스니는 물방울인 줄 얼마나 헤아릴 만한가요?
몸이 아프다면 허물을 벗고서 새빛으로 나아가려는 뜻입니다. 몸이 튼튼하다면 허물벗기를 마쳤기에 즐겁게 삶을 짓는다는 뜻입니다. 몸이 아파 드러누울 적에는 마음에 고요한 숨빛을 새로 품고서 파란하늘 맑은빛을 다시 그린다는 뜻이요, 이제 훌훌 털고 일어설 적에는 처음부터 하나씩 살림길을 새로 걷는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는 얼마나 삶터다운가요? 우두머리나 벼슬꾼을 갈아치운다고 해서 나라가 바뀔 일은 없습니다. 서울을 줄이고, 잿빛집은 그만 짓고, 부릉이도 확 줄이면서, 누구나 스스럼없이 걷거나 뛰거나 달릴 수 있는 골목을 늘릴 노릇이에요. 골목에는 빈터가 있어야겠고, 빈터에는 나무가 우람하게 자랄 노릇이며, 곳곳에 풀밭이 부드러이 있어 누구나 앉거나 드러누워 하늘바라기를 할 수 있으면, 비로소 나라가 아름길로 가리라 봅니다.
아름길은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보금자리가 모인 마을에서 피어납니다. 우리가 낳은 아이도, 이웃이 낳은 아이도, 서로 어른스레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눈빛일 적에 비로소 하늘땅바다숲을 함께 바라보면서 이 여름을 여름답게 누리겠지요.
ㅅㄴㄹ
《海峰 1호》(이영조 엮음, 인천전문대학학도호국단, 1982.11.20.)
《社會科學 1호》(박순희와 다섯 사람, 성신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학, 1987.2.20.)
《한국 인물 전기 전집 3 칭기즈칸·나폴레옹·알렉산더·케사르·쟌다르크, 국민서관, 1978.7.20.첫/1979.6.28.중판)
《한국 인물 전기 전집 4 최충·의천·문익점·정몽주, 국민서관, 1976.11.30.첫/1980.9.27.중판)
《論語新解》(김종무 옮김, 민음사, 1989.7.10.)
《하늘숨을 쉬는 아이들》(임길택, 종로서적, 1996.9.10.)
《민주주의를 위해 포기하세요》(반쪽이, 한길사, 1989.3.22.)
《한국어 체언의 음변화 연구》(이상억,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1.15.첫/2007.7.20.2벌)
《후쿠시마에서 살아간다》(땡땡책협동조합 엮음, 땡땡책, 2014.3.11.첫/2.14.3.18.2벌)
《月刊 稅金 1호》(민병호 엮음, 세금사, 1975.10.1.)
《화엄사 관광》
《英語の辭書指道は, ‘ライトハウス英和辭典’を使って》(八幡成人, 硏究社, 1984.10.15.)
《Mind Garden》(문예진, Rose of Sharon Press, 1979.)
《comic N'ZINE 창간준비호》(편집부, 삼양출판사, 1999.)
《Seletions from Emerson》(영어과, 한국외국어대학, ?)
《환상詩畵集 우정》(홍윤기 엮음, 여학생사, 1985.12.15.)
《조선어학회, 청진동 시절 (중)》(최호연, 진명문화사, 1992.10.25.)
《조선어학회, 청진동 시절 (하)》(최호연, 진명문화사, 1992.10.25.)
《꽃구름과 박힌돌》(곽경아·이필녀, 시인의집, 1984.9.1.)
《불하나 밝혀들고, 외로운 영혼을 위한 詩와 散文》(대구가톨릭문우회 엮음, 대건출판사, 1984.12.1.)
《高等學校 新世界史 初訂版》(鈴木成高·兼岩正夫·松田壽男·鈴木俊, 帝國書院, 1972.4.10.첫/1977.1.20.고침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