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햇밥 (2022.7.1.)
― 서울 〈책이는 당나귀(책이당)〉
어제는 내내 구름바다에 함박비가 쏟아지던 하늘인데, 오늘은 파랗게 열립니다. 이 멋진 여름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 누구나 튼튼합니다.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들꽃은 꽃송이가 짙다지만, 해를 못 먹는 들꽃은 시들시들하고, 해를 못 받는 나무는 열매를 거의 못 냅니다. 사람도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해가 쨍쨍 날 적에는 되도록 가볍거나 짧거나 단출히 입고서 해를 쬘 노릇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늘 여름이라고 하지만, 으레 웃통을 벗고 아랫도리만 살짝 걸칠 뿐입니다. 온몸으로 해를 듬뿍 먹어요. 우리 겨레도 지난날에는 ‘흙을 일구며 살던 사람’은 가벼운 차림새였습니다. 지난날 시골아이는 천조각을 아예 몸에 안 걸치고 해바라기로 빗물을 고스란히 맞으며 뛰놀았습니다.
땡볕을 실컷 받고 걸으며 돌아보는데, 입가리개를 걷어치우거나 여름볕에 살갗을 내놓는 서울사람이 얼마 안 됩니다. 하나같이 그늘에 있으려 하고 해를 꺼립니다. 해바람비가 몸을 살리는 줄 못 느끼는구나 싶고, 해바람비가 몸을 어떻게 살리는지를 배운 적이 없을 수 있겠구나 싶어요.
요즈음은 풀밥(채식·비건)을 한다는 분이 부쩍 느는데, 거의 서울사람(도시인)입니다. 풀밥살림은 안 나쁩니다만, 가게에서 풀을 사다가 먹을 적에는 곰곰이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친환경·유기농 채소’는 거의 비닐집에서 키웁니다. ‘관행농 채소’는 거의 맨땅에서 키웁니다. 이름은 ‘친환경·유기농’이지만 비닐집에서 꼭짓물(수돗물)만 먹기 일쑤요, ‘관행농’은 풀죽임물(농약)에 죽음거름(화학비료)을 잔뜩 머금지만 해바람비를 쐽니다.
둘 다 살림풀하고는 먼 셈인데, 해바람비를 못 받은 ‘비닐집 꼭짓물 푸성귀’가 참답게 사람한테 이바지할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런 푸성귀를 새삼스레 비닐자루에 담아 ‘형광등 불빛’이 내리쬐는 시렁에 놓는걸요.
아침 일찍 〈책이는 당나귀(책이당)〉 앞에 닿습니다. 책짐을 내려놓고서 땀을 들이니, 바깥책(외국도서)을 우리말로 옮기는 ‘나귀’ 님도 일찍 책집 앞으로 옵니다. 열 몇 해 만에 얼굴을 보면서 책수다를 누립니다. 담배·아야후아스카 이야기도 우리말로 옮긴 ‘나귀’ 님이 ‘입가리개·미리맞기(백신)’하고 얽힌 민낯을 다룬 이웃글(외국 자료)을 우리말로 옮기도록 북돋울 펴냄터가 있기를 빕니다.
서울 시내버스 504를 타 봅니다. 장승배기나루를 지나며 보니, 〈문화서점〉은 잘 있구나 싶습니다. 동작구청 건너에 있는 〈책방 진호〉는 저녁 다섯 시 무렵 연다는 알림글이 붙는데, 책시렁이 많이 비었습니다. 빈 책시렁은 쓸쓸합니다.
ㅅㄴㄹ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시몬 비젠탈/박중서 옮김, 뜨인돌, 2005.8.10.첫/2019.10.30.고침)
《노래하는 복희》(김복희, 봄날의책, 2021.9.3.)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