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함박 (2022.6.30.)
― 서울 〈콕콕콕〉
인천으로 가려고 고흥서 안산버스나루로 달렸고, 〈딴뚬꽌뚬〉을 들르고서 서울로 전철을 달리는데, 오늘 서울 볼일이 사라집니다. 어찌할까 생각하다가 오류동에 있는 그림책집 〈콕콕콕〉을 가 보려고 합니다. 함박비가 쏟아집니다. 인천에서는 썩 굵지 않은 빗줄기였으나, 전철을 내려 걷자니 후두둑 시원스럽습니다.
함박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은 혼자입니다. 서울에서 맨몸으로 빗물을 누리는 사람은 없을 만하지요. 서울이기에 오히려 빗물을 맞으면서 몸도 마음도 바다빛을 품으면서 씻을 만한데요. 모든 빗물은 바다에서 옵니다. 맑고 드넓은 바닷방울이 빗방울로 겉모습을 바꾸니, 빗물은 매우 싱그럽습니다.
그나저나, 책집은 일찍 닫으신 듯합니다. 빗길에 쓴 노래꽃(동시) ‘프리다 칼로’를 문고리에 걸어 놓습니다. 이대로 돌아가려다가, 찰칵 찍어 책집지기님한테 띄웁니다. 디딤칸에 앉아 숨을 돌립니다. 빗물에 젖지 않도록 등짐을 다시 여미고, 길손집으로 일찍 가서 빨래를 하고 누울 생각을 하며 빗길을 걷는데 책집지기님이 기꺼이 다시 나와 주신다고 알립니다. 책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림책집 〈콕콕콕〉은 이 이름처럼 콕콕콕 내리는 빗물처럼 북새판 서울 한켠에서 차분히 다독이는 자리라고 느낍니다. 저마다 나아가는 길을 짚고, 스스로 피어나는 길을 돌아보고, 새롭게 자라나는 길을 생각합니다. 걸상에 앉아 빙그르르 둘러보노라면 문득문득 이 그림책하고 저 그림책이 고개를 내밉니다. 이미 읽은 그림책도, 앞으로 읽을 그림책도, 오늘 만날 그림책도, 나중에 다시 볼 그림책도, 새록새록 헤아립니다.
마을책집이 있는 줄 몰랐을 적에는 그냥그냥 빽빽하고 매캐하고 복닥거리는 서울 어느 곳입니다. 마을책집에 한 발짝 들어서고서 다리를 쉬고 눈망울을 밝힌 뒤로는 한여름에 눈꽃송이를 그리고 한겨울에 들꽃잔치를 떠올리는 이야기터입니다.
다시 함박비를 맞으며 걷습니다. 의왕에서 서울마실을 온 이웃님을 만나 두런두런 어울립니다. 밤이 깊을 즈음 길손집에 들어서서 등짐을 내려놓습니다. 다리가 퉁퉁 붓습니다. 등짐살림을 다 꺼내어 바람을 쏘이고서 빨래를 합니다. 이튿날은 맑게 갠 하늘빛을 누리며 걸으리라 어림하며 꿈나라로 갑니다.
어릴 적부터 숲빛이나 시골빛이나 바다빛을 품고 자라나는 어린이가 그림을 사랑한다면, ‘엘사 베스코브’ 님이나 ‘윌리엄 스타이그’ 님이나 ‘바바라 쿠니’ 님이나 ‘이와사키 치히로’ 님처럼 사랑으로 짙푸른 그림책을 선보일 새내기를 만날 수 있겠지요. 요새는 가뭇없이 사라진 듯한 그림책밭 앞길을 그려 봅니다.
ㅅㄴㄹ
《내가 예쁘다고?》(황인찬 글·이명애 그림, 봄볕, 2022.6.1.)
《우리가 케이크를 먹는 방법》(김효은, 문학동네, 2022.6.8.)
《가슴이 콕콕》(하세가와 슈헤이/김숙 옮김, 북뱅크, 2017.11.15.)
《탑의 노래》(명수정, 글로연, 2022.2.11.)
《심장 소리》(정진호, 위즈덤하우스, 2022.3.15.)
《우리말 동시 사전》(숲노래·사름벼리·최종규, 스토리닷, 2019.1.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