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여름꽃 피다 (2022.7.19.)

― 연천 〈오늘과 내일〉



  엊저녁은 부천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오늘은 벼르던 연천마실을 합니다. 길그림으로 보면 양주나 포천보다 북녘으로 더 들어가는 길인데, 막상 전철을 타고 가다가 내려서 다른 전철로 갈아타고, 또 갈아타고, 다시 갈아타고서 버스까지 갈아타고서 〈오늘과 내일〉이 깃든 마을로 가고 보니, 다섯 시간 가까이 걸리는군요. 부릉이로 슥 달리면 이만큼 안 들 테지만, 이 전철 저 전철에 버스로 갈아타고, 또 기다리는 틈을 살피니 만만찮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여러 전철을 갈아타면서 여러 전철을 구경하고 여러 마을을 돌아볼 뿐더러, 서거나 걸상에 앉아 하루쓰기에 글쓰기에 노래쓰기를 합니다. 길에서 한참 보내는 만큼 책을 석 자락 읽습니다. 부릉이를 몬다면 훨씬 빨리 책집에 닿을 테지만 책을 못 읽을 테고 글을 못 쓸 테지요.


  연천 시골버스는 38선을 가로지르고, 싸움터(군대) 옆 ‘다방·이발소’를 스칩니다. 오래된 이곳을 드나드는 싸울아비(군인)는 얼마나 될까요? 지난날 ‘싸움터 옆 가게’는 ‘노닥집(유흥업소)’이었습니다. 이제 오랜 ‘다방’이며 마을가게 앞에는 꽃그릇이 줄지어 해바라기를 합니다.


  연천이나 철원·양구·고성은 남녘으로서는 가장 북쪽이요, 북녘으로서는 가장 남쪽인, 이 땅으로 놓고 본다면 한복판인 터전입니다. 둘로 갈린 나라가 맞닿는(접경지대) 곳에 깃든 책집을 찾아가는 길에 흰도라지꽃·무궁화·나리꽃·애기똥풀꽃처럼 한여름꽃을 만납니다.


  흔히들 여름에 무슨 꽃이냐고 하지만, 나락꽃도 팔월에 이르러야 피고, 늦여름에는 까마중꽃에 부추꽃이 한창인걸요. 다 다른 철마다 다 다르게 꽃이 피고, 다 다르게 흐르는 바람은 다 다르게 속삭이는 노래로 골골샅샅 스밉니다.


  전남 고흥부터 경기 연천까지는 멀다면 멀 테지만, 거꾸로 연천서 고흥이라는 길도 멀 테지요. 그러나 동글동글 돌아가는 푸른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마주한다면 늘 마음으로 만날 테니 썩 먼발치는 아니라고 느껴요.


  총으로 노려보며 가시울타리를 세운다고 해서 마음이 막히지 않습니다. 눈빛을 틔우지 않기에 스스로 갇힙니다. 손을 뻗으면 닿는 자리라서 ‘곁’이나 ‘옆’이 아니에요. 마음이 흐르면서 포근히 어루만질 수 있는 눈망울로 서로 바라보는 자리이기에 곁이나 옆입니다. 여름에 어떤 여름꽃을 곁에 두나요? 가을에 어떤 가을빛을 나란히 놓나요? 마음에 어떤 책을 품으려는 사랑인가요? 허울을 걷어내고 겉치레를 씻어내어 오롯이 마음을 밝히는 넋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되살리기의 예술》(다이애나 애실/이은선 옮김, 아를, 2021.7.8.)

《동네에서 만난 새》(이치니치 잇슈/전선영 옮김, 가지, 2022.2.1.)

《도시를 바꾸는 새》(티모시 비틀리/김숲 옮김, 원더박스, 2022.1.5.)

《곁말, 내 곁에서 꽃으로 피는 우리말》(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22.6.1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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