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실꽃 2022.8.7.
나그네채에서 1 ‘나그네채’라니?
우리 터전을 보면, 예전에는 중국을 섬기느라 한문을 써야 거룩하거나 훌륭하다고 여겼다. 일본이 총칼로 쳐들어와서 서른 해 넘게 윽박지르는 사이에, 숱한 사람들은 이제 이 나라는 일본 그늘에서 못 벗어난다고 여겼고, 이 마음은 일본스런 한자말을 써야 뛰어나거나 똑똑하다는 쪽으로 흘렀다.
일본이 무너질 줄 모른 일본바라기(친일부역자)가 수두룩하다. 이들은 일본이 무너졌어도 일본 한자말을 붙들었다. 1945년 8월 16일부터 새뜸(신문·언론)에는 “우리말 도로찾기를 하자”는 목소리하고 “일본 한자말도 마흔 해 가까이 썼으니 우리말이다” 같은 목소리가 자주 부딪혔다. 우리나라는 일본바라기(친일부역자)를 하던 이들이 벼슬자리(공무원)를 아주 잡아먹었고, 배움터(학교)도 거의 잡아먹은데다가, 글밭(문단·언론계)도 거의 다 일본바라기였다.
이런 슬픈 민낯이기에, 1945년 8월이 지난 뒤에도 “일본하고 싸운(독립운동) 이들이 낸 우리말 도로찾기”라는 목소리보다는 “‘일본바라기로 힘·이름·돈을 거머쥔 이들이 외친 일본 한자말 그냥쓰기”라는 목소리가 온나라를 집어삼켰다. 애써 배움책(교과서) 말씨를 우리말로 손질해서 새로 엮었으나, 1950년부터 불거진 한겨레싸움(한국전쟁)이 끝난 뒤로는, 또 이승만이 우두머리(대통령)로 이어가고, 1961년부터 박정희가 새 우두머리로 서슬이 퍼런 동안, “일본하고 싸우며 우리말을 되찾으려던 목소리”는 거의 목아지가 잘렸다.
앞소리가 길었다. 지난날에는 ‘여인숙’이나 ‘여관’이란 한자말을 썼다. 이러다가 ‘모텔’이란 영어가 들어서면서 ‘여인숙·여관’처럼 한자말로 지은 이름은 값싸거나 낮거나 허름한 곳으로 바라보는 물결이 퍼졌다. ‘호텔’은 예전에도 있기는 했으나 비싼 곳이란 이름이 높았다면, 요새는 여관이나 모텔조차 다 ‘호텔’이란 이름을 붙인다.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며 나라 곳곳 마을책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으로서 우리말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행객·관광객’이 아닌 ‘길손’이라서 ‘길손집·길손채’란 이름을 지어 봤다. ‘나그네집·나그네채’나 ‘손님집·손님채’란 이름도 지어 보았는데, 이 가운데 ‘나그네채’를 쓰기로 한다. ‘채’는 집을 세는 이름이기도 하고, 따로 두어 머무는 작은 칸을 가리키기도 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