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모든 새날 (2022.5.24.)

― 인천 〈나비날다〉



  우리가 쓰는 말은 모두 누가 지었습니다. “누가 지었다”처럼 말할 수는 있되, 이 ‘누’가 누구인지는 뚜렷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웃나라도 매한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쓰는 말은 그저 “사람들이 지었”어요. “말을 지은 사람들”은 스스로 이름을 드러내거나 남기지 않았어요. “말을 지은 사람들”은 “모든 말에 서로 사랑하고 아이들한테 사랑씨앗을 물려준다는 마음”만 남겼습니다.


  오늘날은 영어로 “브랜드 네이밍”이라 하면서 ‘이름짓기’를 꽤나 쏠쏠히 장사로 벌입니다. 잘 지은 이름 하나가 돈을 어마어마하게 끌어모은다고 합니다. 곰곰이 보면 사람한테 붙이는 이름뿐 아니라, 모임이며 나라이며 일터이며 살림에 붙이는 이름이 수두룩해요.


  지난날에는 “말(이름)을 지은 사람이 누구인가 굳이 안 남겼다”면, 오늘날에는 말(이름)을 지은 사람이 누구인가 따로 밝히고 틀(상표·저작권법)에 집어넣”어요. 돈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 텐데, 옛날이 좋고 오늘날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저 오늘날에는 말을 다루고 이름을 붙이는 즐거운 마음이 확 사라졌을 뿐입니다.


  인천 배다리 여러 마을책집을 돌면서 ‘우리말 참뜻찾기 이야기밭, 우리말꽃 수다마당 : 우리말 어원풀이 이야기’를 펴기로 합니다. 5월 24일 불날 19시에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에서 첫수다를 열고, 9월까지 다달이 다섯걸음을 내딛습니다.


  가벼이 여는 우리말 참뜻찾기 첫자리에서는 ‘구두’라는 낱말을 살그머니 얹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우리말에서 비롯했다고 여기고, 우리나라에서는 일본말에서 비롯했다고 여기는 ‘구두’인데, 우리는 우리 삶자취를 돌아보면서 말밑을 살피면 됩니다. ‘굳다·굽’을 보면 알 만하지요. ‘꿋꿋·꼿꼿·꾸준히·꼰대’로 잇는 낱말을 살필 만하고, ‘꼭·꽂다·꼬마·꼴찌·꼭두·꼬리·꽃’으로 흐르는 말결을 짚을 만하고, ‘꼭두머리·꼭두각시’를 생각할 만합니다.


  좋은말이나 나쁜말은 없습니다. 모든 말은 삶을 드러내는 ‘삶말’입니다. 이리하여 ‘모시’라는 풀에서 실을 얻어 짓는 ‘모시옷’을 헤아리면서 ‘못·모내기·목·몸’에 ‘모으다·길목·몰다’가 얽힌 수수께끼를 즐거이 풀 만해요.


  수수한 우리말 ‘가시내·머스마’에는 어떤 깊이하고 너비가 깃들까요? 쉬운 우리말부터 말뜻하고 말밑하고 말결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말하기뿐 아니라 글쓰기 실마리를 열지 않을까요? 모든 하루는 새날입니다. 한 해에 하루만 새날(생일)일 수 없어요. 한 해가 언제나 새롭게 빛나는 나날이에요.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르게 지은 살림으로 다 다르게 빛나는 말이 태어났어요. 오늘을 보면 모레가 환합니다.


ㅅㄴㄹ


《위대한 일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김해자, 한티재, 2022.3.21.)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이설야, 창비, 2022.5.27.)

《보통의 우리》(박서련·조우리·한정현·황모과, 인타임, 2022.5.4.)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숲노래·최종규·사름벼리, 스토리닷, 2017.12.7.)

《쉬운 말이 평화》(숲노래·최종규, 철수와영희, 2021.4.23.)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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