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강연 (2022.7.26.)
― 인천 〈그림책방 마쉬〉
시골집에서 길을 나서는 새벽녘에 마을 할매를 만나면 “어이, 어디 가나?” 하고 물으십니다. 부산이나 인천이나 대전에 가더라도 “네, 서울에 갑니다.” 하고 말합니다. “좋은 일 많은갑네?” 하고 물으시면 “네, 여기저기 강의를 하러 다닙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렇게 일 다니면 좋제. 잘 댕겨 오쇼.”
제가 하는 일을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그냥 ‘강의·강연’이라 말하고, 이야기를 펴는 자리에서는 ‘이야기꽃·이야기밭’이라 말합니다. 제가 하는 일인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일을 헤아리는 이웃님을 만날 적에는 ‘책수다·글수다·살림수다·숲수다’를 함께한다고 말합니다.
어른 사이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강의·강연’ 같은 한자말이 떠돌지만, 어린이한테는 도무지 안 어울립니다. ‘북토크’도 어린이 앞에서 못 쓸 말입니다. ‘도서전’이나 ‘책축제’도 어린이 곁에서 섣불리 못 쓸 말이에요. 일본스런 한자말이나 영어가 나쁘기에 어린이한테 안 써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말이 아닌 말은 어른으로서도 어린이한테도 생각을 북돋우는 길을 밝히지 못 할 뿐입니다.
어른들은 ‘대화·상담·토론·토의’ 같은 일본스런 한자말을 자꾸 쓰는데, 어린이가 이런 말을 알아듣거나 하나하나 가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런 한자말 밑뜻을 찬찬히 못 짚을 뿐 아니라, 우리말 ‘말’이 어떤 뜻이요 말밑(어원)인지 하나도 못 읽는데다가 ‘이야기’가 어떤 뜻이고 말결이며 말씨인지 도무지 생각조차 안 하고 살아간다고 느낍니다. ‘수다’란 우리말이 왜 ‘수다’인지 모르고요.
생각을 마음에 담는 소리이기에 ‘말’입니다. 서로 이으면서 주고받는 길에 흐르는 말이기에 ‘이야기’입니다. 서로 생각을 실컷 나누려고 너나없이 말을 잔뜩 하기에 ‘수다’입니다.
우리말 ‘말·마음·마을’은 말밑이 같습니다. 우리말 ‘이야기·잇다·일다·일’은 말밑이 같아요. 우리말 ‘수다·숲·수수하다·숱하다·수북하다’도 말밑이 같지요. 얽고 맺는 우리말을 하나씩 짚으면서 어린이 눈빛으로 생각을 나눈다면, 우리는 앞으로 ‘강의·강연’이 아닌 ‘말빛잔치’를 펴고 ‘이야기바다’를 누리는 즐겁고 상냥한 어른으로 새롭게 설 만하다고 봅니다.
요새 “매미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하고 말하는 어른들을 자주 보았습니다. 모르는 남이라면 지나치고, 알 만한 이웃이라면 “부릉부릉 시끄럽고 매캐한 서울(도시)에 숲빛을 밝히려고 우렁차게 노래합니다.” 하고 여쭈어요. 인천 배다리에서 저녁에 이야기꽃을 펴려고 온 길에 〈그림책방 마쉬〉에 들르려고 한참 기웃기웃 서성였으나 세 시간 넘게 “강연 中”이라고 붙어서 하늘바라기를 했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