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빛/숲노래 우리말 2022.7.23.
오늘말. 홈
모든 말은 매우 쉽고 부드럽게 삶이라는 거미줄로 잇습니다. 어릴 적에 혼자 놀면 마을 할머니는 “혼자 노는구나” 하고 말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밭을 가꾸는 할아버지는 호미로 땅을 콕콕 홉니다. 어머니는 바늘을 쥐어 옷을 호치지요. 빗물이 홈통을 거쳐서 흐르고, 홀가분히 빗방울을 받으며 놀아요. 말 하나가 무엇을 가리키거나 나타내는지 잘 모르면서도, 둘레 어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드러나는 자국을 하나하나 느끼면서 알아차립니다. 따로 알려주지는 않아도 겉차림이나 속빛에 어리는 삶무늬로 말을 새겨요. 마땅한 일이지요.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살림하는 수수한 사람들이 지었어요. 삶을 가꾸고 사랑하는 여느 순이돌이가 지은 말이에요. 누가 먼저 말하거나 밝힌 말은 아닙니다. 삶이라는 너울에 문득 써넣듯 마음에 담아서 다 다른 삶빛을 그리는 말입니다. 배움터를 오래 다니면서 파고 들어가도 알아낼 수는 있으나, 이보다는 손수 살림꾼으로 즐겁게 일하고 기쁘게 쉬고 아이를 낳아 돌보면, 이름 한 자락에 깃든 자취를 문득 깨달을 만해요. 대단히 보람찬 길을 가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웃고 어깨동무하는 길이면 넉넉합니다.
ㅅㄴㄹ
가리키다·나타내다·드러내다·뜻하다·그리다·긋다·내붙이다·써넣다·쓰다·적다·겉·겉모습·겉차림·글이름·너울·눈금·무늬·자국·자취·자랑·찌·티·홈·떨치다·바깥모습·이름·밝히다·알려주다·알리다·보람·보이다·보여주다·넣다·담다·옮기다·하다·매기다·새기다·아로새기다·파다 ← 징표
먼저알림·먼저 알리다·먼저 말하다·먼저 밝히다·먼젓글·먼젓말·미리글·미리말·미리알림·미리 알리다·미리 말하다·미리 밝히다 ← 스포일러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