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오늘 걷는 길은 (2022.4.30.)

― 진주 〈동훈서점〉



  여태 한 곳에 깃들던 헌책집 〈동훈서점〉이 새터로 옮깁니다. 스무 해 남짓 한 곳에서 책집살림을 꾸릴 수 있던 나날이란 더없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새터로 떠나는 길은 애벌레가 날개돋이를 하고서 나비로 거듭나듯 찬찬히 피어나는 길이 될 만하다고 느낍니다.


  포항으로 가는 길에 진주에 들릅니다. 아니, 바로 포항으로 날아가기보다는 진주를 거칩니다. 아니, 고흥에서 포항으로 바로가는 길이 없으니 하룻밤을 다른 고장에서 지내야 하는데, 진주책집을 들러서 가려고 합니다.


  시골이든 큰고장이든 가게하고 집이 줄잇습니다. 길에는 부릉부릉 넘실거리고, 걷는 사람은 적습니다. 갈수록 덜 걷거나 안 걸으면서 부릉부릉 달리기에 거님길은 밀려나고, 거님길에 부릉이(자동차)를 올리는 사람이 늘고, 하늘이 매캐합니다.


  저는 손잡이(운전대)가 아닌 붓이랑 낫이랑 아이 손이랑 자전거랑 빨래비누랑 책이랑 풀잎을 손에 쥡니다. 때로는 바람줄기나 빗방울을을 손에 얹습니다. 나비나 잠자리나 풀벌레를 손등에 앉히기도 합니다. 부릉이를 쥐는 손으로 바뀐다면 이 모두하고 멀어요. 혼자 살아갈 적에는 붓하고 책하고 바람을 쥐려고 걸어다녔고, 아이를 낳은 뒤에는 아이랑 손잡고 다니며 노래하고 춤추려고 걸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면, 나무는 늘 기꺼이 베풀어요. 나무한테 거름을 주거나 돈을 주어야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따사로이 바라보는 눈길이면 넉넉해요. 해바람비처럼 나무를 포근히 안으면, 나무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삶이라면 곁에 늘 웃음꽃하고 눈물꽃이 나란히 있어요.


  새터 〈동훈서점〉 골마루를 거닐며 책을 쓰다듬고 책시렁을 돌아봅니다. 두 손에 쥐려는 책에는 앞사람 손자취하고 발걸음이 묻어납니다. 이 책을 짓고 엮은 사람 손길에, 이 책을 먼저 읽고 새긴 사람 눈길에, 이 책을 새로 읽고 배울 오늘 마음길이 만납니다.


  마음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사랑으로 갈 테지요. 마음에 미움이라는 씨앗을 심기에 미움으로 갈 테고요. 제 마음에는 손잡고 거닐면서 노래하는 사랑이라는 하루를 심을 생각입니다. 잔뜩 장만하는 책으로 등짐이 묵직하다면 더 천천히 걸으면 되고, 더 자주 등짐을 길에 내려놓고서 바람맞이를 하고, 나무 곁에 앉아서 가만히 눈을 감고서 쉬면 됩니다.


  오늘날은 ‘살아남는 길’로 밀어붙이는구나 싶어요. 뭐, 살아남기도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저는 ‘살아남자는 씨앗’ 아닌 ‘살림짓자는 꿈씨앗’을 심습니다.


ㅅㄴㄹ


《휠체어에 사랑을 싣고》(고명승, 고려원, 1990.1.15.첫/1990.1.25/3벌)

《百中經》(노익형, 박문서관, 1934.1.15.)

《學習便覽 理科辭典》(學習社 編輯所 엮음, 學習社, 1933.2.15.첫/1935.8.1.고침17벌)

《현대물리학과 한국철학》(김상일, 고려원, 1991.4.1.)

《에이브 현대위인 21 가가린》(W.G.바치에트/오정환 옮김, 학원출판공사, 1989.10.30,)

《술 취한 새들 사건》(도널드 소볼/이원하 옮김, 어린이왕국, 1989.11.30.)

《로버트와 로봇》(에바 슈밥/이명희 옮김, 금성출판사, 2002.8.10.)

《입문편 숙녀 바둑》(바둑연구원 엮음, 대현출판사, 1983.1.31.첫/1983.3.30.2벌)

《貊耳》(박문기, 정신세계사, 1987.5.15.)

《天符經의 비밀과 백두산족 文化》(권태훈 이야기·정재승 엮음, 정신세계사, 1989.11.8.첫/1989.11.15.2벌)

《우리말의 상상력》(정호완, 정신세계사, 1991.4.13.)

《민족혼 제1집》(우리를 생각하는 모임, 바람과물결, 1987.10.3.첫/1989.6.30.2벌)

《나는 문이다》(문정희, 민음사, 2016.5.27.)

《英語原動力》(안현필, 정도출판사, 1979.11.1.)

《땅과 집 그리고 재벌》(한국노동교육협회, 돌베개, 1990.4.15.)

《삶은 가장 큰 웃음이다》(B.S.오쇼 라즈니쉬/김춘수 엮음, 백암, 1992.6.10.)

《方言硏究法》(藤原與一, 東京堂出版, 1964.12.20.)

《實用 麥作增收圖解》(竹上靜夫, 養賢堂, 1956.3.25.첫/1958.5.15.2벌)

《사람을 꿰뚫어보는 知慧》(門脇尙平/기준성 옮김, 행림출판사, 1977.10.1.첫/1978.11.30.2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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