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신문 한국일보에

편성준 씨가

“'~씨'라는 호칭이 그렇게 나쁩니까?”란 이름으로

글을 실었다고 한다.


이 글을 곰곰이 읽어 보았다.

편성준 씨뿐 아니라

글을 쓰는 숱한 사람들이

우리말 ‘씨·님’ 쓰임새를

잘 모르겠구나 싶더라.


‘님’이란 말씨는 나쁘지 않다.

‘님’은 나쁘고 

‘씨’는 좋을 수 있을까?


두 낱말은 쓰는 자리가 다를 뿐이다.

‘씨’는 또래·동무·손아랫사람한테 쓴다.

‘님’은 누구한테나 쓴다.


누구한테나 쓰는 말인 ‘님’이니

‘불특정다수’가 모이는 자리에서는

마땅히 ‘님’을 써야 어울리고

그 자리가 부드럽다.

.

.

숲노래 말빛/숲노래 우리말 2022.7.17.

말 좀 생각합시다 73 씨 님



  우리말 ‘씨’는 ‘씨앗·씨알·씨톨’하고 얽힙니다. 우리말 ‘님’은 ‘놈·남·나·임’하고 얽혀요. “아무개 씨”나 “누구 씨”처럼 쓰는 ‘씨’는 동무나 또래나 손아래인 사람을 높이려고 붙여서 부르는 말입니다. ‘님’은 누구한테나 서로 높이려고 붙여서 부르는 말입니다.


  예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기한테 ‘아기씨’라고 깍듯이 여겼습니다. ‘아가씨’나 ‘색시’ 같은 우리말에 이 ‘씨’를 붙인 버릇이 남았습니다. 어른인 사람이 어질게 손아랫사람을 곱게 여기고 돌보고 살피려는 마음으로 붙인 말이 ‘씨’입니다. 이 ‘씨’는 ‘마음씨·말씨’에 ‘글씨·솜씨·맵시’ 같은 자리로도 퍼졌어요. 이름씨(명사)·그림씨(형용사)·움직씨(동사)·느낌씨(감타사)·토씨(조사)·어찌씨(부사)처럼, 말결을 살피는 자리에도 씁니다.


  누구나 서로 높이는 자리에 쓰는 ‘님’인데, 예부터 어른들은 마땅히 아기한테도 ‘아기님’이라 불렀어요. 곱상하게 여기는 마음을 담지요. 아이들은 ‘해님·꽃님·별님·흙님·돌님·새님·벌레님·바다님’처럼 둘레 모든 숨붙이한테 스스럼없이 ‘님’을 붙였고, 어른들은 ‘하늘님(하느님)·비님·바람님’이라 했고 ‘물님·불님·숲님’처럼 숲을 고이 섬기는 뜻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이러다가 우두머리가 나타나 나라를 세우면서 그만 ‘임금님’처럼 ‘님’을 쓰도록 억누르는 틀이 퍼졌어요. 2000년에 이르도록 ‘님’은 섣불리 쓸 수 없되 아이들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퍽 홀가분히 쓰던 말씨였습니다. 그리고 1994년 무렵 차츰 퍼진 누리판(피시통신)에서 너나없이 글로 만나고 사귀며 ‘나이를 안 가리고 어울릴 적에’ 서로 부를 마땅한 말씨를 놓고 한참 실랑이가 있었으며, ‘님’으로 쓰는 길이 낫겠다는 목소리가 높았어요. 어느 분은 ‘네티즌’을 ‘누리꾼’으로 고치면 좋겠다고 했는데, 저는 ‘누리님’이 낫다고 여겼습니다.


  ‘나’하고 ‘너’는 ㅏ랑 ㅓ만 다릅니다. ‘남’하고 ‘나’도 매한가지요, ‘님’하고 ‘놈’도 다 한 끗이 벌어질 뿐입니다. 보는 자리에 따라 달리 가리키는 이름인 ‘나·너·남’이자 ‘님·놈’인 터라, 나이·이름값·힘·돈을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동무하듯 스스럼없이 높이는 ‘님’이요, 낮추는 ‘놈’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