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헌책을 왜 사는가 (2022.4.18.)

― 서울 〈서울책보고〉



  부릉이(자가용)를 안 몰면서 들길을 걷고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리면, 철마다 언제 어떻게 바람이 훅훅 바뀌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두 다리로 걷고 두 손으로 흙이며 바람이며 빗물을 만졌으니, 모든 사람이 스스로 철빛을 읽고 삶빛을 가꾸었어요. 오늘날에는 걷는 사람이 확 줄 뿐 아니라, 바깥바람을 하루 내내 쐬면서 지내는 일터는 드물다 보니, 그만 스스로 하늘빛을 잊습니다.


  전남 고흥뿐 아니라 나라 어느 곳이라도 사월볕도 꽤 셉니다. 삼월은 아슴프레 겨울빛이 저물면서 싱그럽다면, 사월은 조금씩 낮이 후끈하면서 풀빛이 짙어요. 오월은 거의 여름이라 할 만큼 볕살이 내리쬐지요.


  시골에서 살며 돌아보면, 오늘날 시골아이도 배움터만 오가느라 막상 아침하고 낮하고 저녁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 바람빛인가를 모르기 일쑤입니다. 시골에 살기에 구태여 ‘시골로 나들이’를 갈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모든 배움틀은 서울바라기(in 서울)로 치달으니, 시골아이가 외려 들마실·바다마실·숲마실을 안 합니다. 서울아이가 되레 들마실·바다마실·숲마실을 자주 한달까요.


  요즈음 걷거나 자전거를 달려 바다나 숲을 오가는 시골아이가 있을까요? 얄궂게도 시골아이가 서울아이보다 풀꽃나무 이름을 더 모르고 논밭살림을 등지는 얼거리로 흐르는 판입니다. 이처럼 뒤집힌 민낯을 읽는 고을지기(지자체장)는 없는 듯해요. 시골배움터 길잡이도 매한가지입니다.


  〈서울책보고〉로 찾아갑니다. ‘보이는 라디오’를 미리 담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헌책집 두 곳을 들려주는 몫입니다. 새책집이 아닌 헌책집을 굳이 마실하는 뜻을 이야기합니다. 아니, 새책집하고 헌책집을 나란히 다니는 마음을 얘기합니다.


  요 몇 해 사이에는 혼책(독립출판물)이 부쩍 늘었다는데, 혼책은 진작부터 많았습니다. 모르는 사람만 몰랐을 뿐이에요. ‘지역문화·문학’은 언제나 혼책이었습니다. 1980∼90해무렵(년대)에 쏟아지던 ‘노동자·공부방·야학 글모음’은 모두 혼책이었어요. 예전에는 ‘혼책(독립출판물)’이라 안 하고 ‘비매품’이라 했을 뿐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2자락씩 띄우는 책이 아닌, 마을에서 오순도순 나누던 혼책(비매품)은 예전부터 새책집에는 안 들어갔고 헌책집에만 들어갔어요.


  여러 고장 ‘글모음’이나 ‘비매품’을 건사하자면 여러 고장 헌책집을 돌아다닙니다. 돈·이름·힘이 아닌 삶·살림·사랑으로 이야기를 여민 사람들 발자취를 찬찬히 짚는 이들은 늘 헌책집을 함께 다니면서 책빛을 일구었습니다. 책숲(도서관)조차 비매품은 안 건사했거든요. 헌책집이 있기에 마을빛(지역문화)을 지켰어요.


《韓國 아름다운 미지의 나라》(비르질 게오르규/민희식 옮김, 평음사, 1987.12.15.)

《중국에서의 조선어 기초어법》(쉬앤 떠우/손정일 옮김, 서우얼출판사, 2006.4.25.)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백기완의 통일 이야기》(백기완, 청년사, 2003.1.6.첫/2003.2.14.2벌)

《せなかをとんとん》(最上一平 글·長谷川知子 그림, ポプラ社, 1996.12.첫/2005.12.8벌)

《복합오염》(아리요시 사와코/정성호 옮김, 장락, 1994.1.10.2벌)

《말뚝에게 절하고》(염재만, 세종출판공사, 1990.3.2.)

《여성문학 1》(김진홍 엮음, 전예원, 1984.1.30.2벌)

《왕조의 유산, 외규장각도서를 찾아서》(이태진, 지식산업사, 1994.4.30.첫/1994.6.10.2벌)

《다섯살배기 딸이 된 엄마》(신희철, 창해, 2005.2.14.첫/2005.3.25.2벌)

《아주 오래된 사랑》(오철수, 연구사, 1993.12.20.)

《한겨레 평론 1》(한겨레사회연구소 엮음, 이론과실천, 1989.7.29.)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