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안다면 (2022.2.17.)

― 부산 〈파도책방〉



  아이하고 걸을 적에는 늘 아이 걸음에 맞춥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아주 어릴 적에는 두리번두리번하느라 으레 느릿느릿 걷다가 아예 멈추기 일쑤였습니다. 이럴 적에는 같이 멈추어 함께 두리번두리번했습니다. 아이들하고 다니면서 미리잡기(예약)를 아예 안 했습니다. 때에 맞추어 움직이자면 아이 걸음하고 어긋나요. 더구나 아이로서는 이 모습도 보고 저곳에서도 놀고 싶은걸요. 어버이로서 늘 한 가지만, 아이가 똥오줌이 마렵다고 할 적에 가까이에서 얼른 찾아갈 뒷간이 어디에 있으려나 하고 어림해 두었습니다.


  숲노래 씨는 혼자 살던 무렵 오직 책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둘레에 책집이 없으면 손에 책을 쥐었어요. 길을 걷건 버스·전철을 타건 늘 읽었습니다. 길거리를 가득 메운 가게를 쳐다볼 마음이 없고, 왁자지껄한 소리는 흘려보냅니다. 바야흐로 아이를 맞이하고서는 아이 손을 잡고 걸었는데, 아이들이 부쩍 자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거나 걸으면 가만히 바라보면서 느긋이 걷습니다. 두 아이한테 두 손을 다 주던 손은 어느새 빈손으로 돌아오고, 이 빈손에는 붓을 쥡니다. 아이들한테 건네고 이웃한테 드릴 노래꽃(동시)을 쓰지요. 걷거나 버스로 움직이는 길에.


  하루가 다르게 뚝딱질로 시끄러이 뒤바뀌는 보수동 책집골목을 바라봅니다. 부산 책집골목이 이제 토막났습니다. 부산시하고 부산 중구청이 책을 얼마나 미워하는가를 잘 엿볼 만합니다. 책을 끔찍히 싫어하기에 이곳 책집골목이 이토록 토막나고 시끄러운데 쳐다보지도 않는군요.


  책집골목을 살리는 길은 따로 안 찾아도 됩니다. 그저 길잡이(교사)하고 벼슬꾼(공무원)부터 이레마다 하루씩 책집마실을 하면서 책을 사도록 이끌면 돼요. 나라돈(세금)으로 일삯을 받는 이들은 ‘스스로 배움길’을 닦도록 ‘이레마다 책집마실을 해서 일삯 1/10을 책값으로 쓰게끔’ 매겨야지 싶습니다. 나라에서는 어린이·푸름이한테 ‘교재구입비’란 이름으로 돈을 주는데, 이 돈은 ‘학습지·교재’가 아닌 ‘책’을 사읽는 데에만 쓰게끔 살펴야지 싶어요.


  작은아이랑 보수동을 걷습니다. 〈파도책방〉에 깃듭니다. “보라 씨는 아기일 적에 이곳에 와서 생각이 안 날 수 있지만, 보라 씨 마음에는 이곳에 와서 놀던 하루가 있어요.” “그래요? 생각 안 나는데요?” “그래,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를 떠올리기보다는, 놀며 어떤 마음이었나를 그려 보셔요.”


  어제까지 몰랐으면 오늘부터 배우면서 누리면 즐겁습니다. 오늘까지 몰랐다면 이제부터 빙그레 웃으며 받아들이면 아름답습니다. 모든 하루는 오롯이 노래입니다.


ㅅㄴㄹ


《조지와 마사》(제임스 마셜/윤여림 옮김, 논장, 2003.12.20.)

《거인의 정원》(최정인, 브와포레, 2021.12.30.)

《우리들의 아침》(김석주, 시로, 1987.12.7.)

《묘(猫)한 고양이 쿠로 1》(스기사쿠/최윤희 옮김, 시공사, 2003.6.25.)

《묘(猫)한 고양이 쿠로 2》(스기사쿠/최윤희 옮김, 시공사, 2003.7.17.)

《묘(猫)한 고양이 쿠로 3》(스기사쿠/최윤희 옮김, 시공사, 2003.8.23.)

《묘(猫)한 고양이 쿠로 4》(스기사쿠/최윤희 옮김, 시공사, 2003.11.24.)

《묘(猫)한 고양이 쿠로 5》(스기사쿠/최윤희 옮김, 시공사, 2003.12.6.)

《묘(猫)한 고양이 쿠로 6》(스기사쿠/최윤희 옮김, 시공사, 2004.2.23.)

《묘(猫)한 고양이 쿠로 7》(스기사쿠/최윤희 옮김, 시공사, 2006.2.28.)

《묘(猫)한 고양이 쿠로 8》(스기사쿠/최윤희 옮김, 시공사, 2006.3.30.)

《묘(猫)한 고양이 쿠로 9》(스기사쿠/최윤희 옮김, 시공사, 2006.5.30.)

《보수동, 그 거리》(혜광고등학교 외, 효민디엔피, 2021.12.1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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