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6.24.

아무튼, 내멋대로 13 영화평을 쓰려면



  곁님을 만나서 아이를 낳기 앞서까지는 영화는 아예 안 보다시피 하면서 살았다. 어느 날 곁님이 그러더라. “여보, 그대가 책을 좋아하는 줄은 알겠지만, 아이들한테 책만 보라고 할 생각이에요? 이 세상에 아름다운 노래하고 영화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책을 안 보고 아름다운 노래하고 영화만 찾아서 듣고 본다고 해도 다 듣거나 볼 수 없어요.” 뒷통수를 호되게 맞았다. 주먹이 아닌 말로 맞았다. 큰아이를 낳아 날마다 똥오줌기저귀를 빨고, 아이랑 곁님을 먹이고, 집안을 쓸고닦고 하느라 해롱거리던 어느 날 또 핀잔을 들었다. “여보, 난 아이들한테 책도 영화도 다 안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이들한테는 숲을 그대로 보여주고,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어버이로서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곁님 꾸지람을 듣고서 몇 달 동안 밤새 재미난(?) 꿈을 꾸었다. 글도 책도 영화도 없던 아스라이 머나먼 옛날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그림이 꿈자리마다 영화처럼 흐르더라. 책도 영화도 학교도 관광지도 없는 까마득히 먼 옛날 옛적에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살림을 지으면서 늘 넉넉하게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면서 숲 한복판에서 모든 숨붙이(생명)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잘 살더라. 책을 삶에서 떼지 못하고 살면서 영화를 아이들하고 함께 보내는 나날을 누리다가 문득 생각했다. ‘우리가 집에서 보는 이 영화’를 다른 이웃은 어떻게 느끼거나 보려나 궁금했다. 평론가란 이들이 남긴 영화평을 찾아보다가, 그냥그냥 영화를 본 사람들이 남긴 영화평을 죽 훑다가, “어쩜, 이 사람들은 영화를 되게 미워하나 봐!” 하는 소리가 절로 터져나왔다. 영화를 딱 한 판만 보고서 이 영화를 ‘보았다’거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사회 한 판을 보고서 영화평을 써도 될까? 나는 책이야기(서평)를 쓸 적에 적어도 그 책을 일고여덟 판을 되읽고 나서야 쓴다. 한 판만 슥 훑고서 쓸 수 있는 책이야기란 없다. 말이 안 되잖은가? 고작 한 판을 슥 첫 줄부터 끝 줄까지 훑고서 어떻게 그 책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러면, 영화평을 쓰려면 영화 한 자락을 몇 판쯤은 차분히 보아야 할까? 아이들하고 함께 영화를 보고서 이따금 영화평을 남겨 보곤 했는데, 내가 글로 옮긴 영화평은 “적어도 쉰 판을 본 영화”이다. 그러나 “적어도 백 판을 본 영화”여야 그 영화를 어느 만큼 짚어낼 만하다고 느낀다. 아이들하고 어느 영화를 깊고 넓으면서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한다면, “이럭저럭 500판은 보아야” 영화평을 쓸 만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고작 한두 판을 겨우 보고서 끄적이는 글은 ‘영화평’이 아니라고 느낀다. 우리나라 영화평론가는 영화를 끔찍하게 미워하거나 싫어한다고 느낀다. 그들이 영화를 좋아하거나 사랑한다면, 영화평을 쓰려고 어느 영화 하나를 적어도 쉰 판이나 백 판, 때로는 삼백 판이나 오백 판쯤은 보고 나서야 써야 옳지 않을까? 이웃나라 일본에서 그림꽃(만화)을 그린 테즈카 오사무 님은 영화를 볼 적에 ‘새벽 첫 상영’부터 ‘밤 마지막 상영’까지, 내내 한자리에 앉아서 대여섯이나 예닐곱 판을 내리 보았다고 했다. 마감에 쫓겨 바쁘지만, 드디어 하루쯤 말미가 나면 새벽부터 밤까지 극장에 눌러앉아 ‘똑같은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 만큼 다시 보면서 즐겼다’지. 영화평이란 글을 쓰는 분 가운데 ‘적어도 열 판쯤 다시보기’를 하고서 쓴 사람이 있을까?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우리나라 영화평론가는 모조리 쓰레기글조차 안 되는 엉터리라고 본다. 제발, 영화를 사랑해 주기를 빈다. 100판이나 500판을 다시보기를 하고 싶은 영화가 아니라면 1판조차 안 보아야 맞다고 생각한다. 두고두고 건사하면서 끝없이 되읽을 책이 아니라면, 구태여 돈을 들여서 살 책이 아니라고 느낀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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