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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1000권] 아이를 사랑한다면

《라니아가 떠나던 날》

 카롤 잘베르그 글·엘로디 발랑드라 그림/하정희 옮김, 숲속여우비, 2009.12.5.



  큰아이를 낳고서 한 해가 지날 즈음 살짝 숨을 돌렸어요. 열넉 달 만에 큰아이가 스스로 똥오줌을 가렸거든요. 드디어 똥오줌을 가린들 아이는 내키는 대로 여기에도 누고 저기에도 눕니다. 누고 싶을 적에 누어야 하니까요. 천기저귀를 대는 살림은 하루 내내 아이를 지켜보는 손길입니다.


  이제 큰아이가 밤에도 스스로 똥오줌을 가리는구나 싶어 밤에 삼십 분 넘게 잘 수 있을 즈음 작은아이가 태어납니다. 큰아이하고 여태 살아왔으니 작은아이하고는 한결 수월하겠다고 여겼고, 이 마음을 작은아이가 읽었는지 즐겁게 소꿉살림을 지었어요. 더구나 곁에서 누나가 이모저모 챙기고 도우니 작은아이는 한두 달 일찍 똥오줌 가리기를 했습니다.


  두 아이하고 복닥거리는 어느 날 《라니아가 떠나던 날》을 만났고, 이처럼 알뜰하게 삶빛을 드러내는 작은책을 눈여겨보면서 여미는 펴냄터가 있기에 반가웠습니다. 그렇지만 작은책을 선보인 작은펴냄터는 이슬처럼 조용히 닫습니다. 책도 사르르 사라집니다.


  모든 책은 저마다 다르게 아름답습니다. 《라니아가 떠나던 날》은 라니아가 ‘돈에 눈먼 어른들’한테 속아 집을 잃고 동생하고 어버이를 잃을 뿐 아니라, 제 마음에 흐르던 숲빛하고 사랑하고 마음까지 죄다 잃는 나날을 부드러이 들려줍니다. 이른바 ‘숲마을 숲아이를 꾀어 서울(도시)에 내다파는 장사꾼’하고 ‘숲마을 숲아이를 싸게 사서 종(노예)으로 부리며 돈 한 푼 안 내는 서울내기’가 무슨 짓을 저지르는가를, 게다가 이런 일이 요즈막에도 안 사라진 민낯을 그려요.


  우리나라는 아직도 ‘아기 장사’를 합니다. 입발림말로 ‘해외입양’이라 하지요. 목돈에 아기를 나라밖에 넘기는 짓을 언제 멈출는 지 모르는데, 그만큼 우리 스스로 어린이를 잊으면서 온나라를 ‘서울어른한테만 좋은 틀’로 짜맞추는 탓입니다. 서울이며 시골을 봐요. 아이들이 맨발로 뛰놀며 나무타기를 하거나 냇물에 뛰어들 빈터나 쉼터가 있나요? 어디나 커다란 부릉이(자가용)가 흘러넘치고 빵빵댑니다. 겨우 빈터가 있어도 아이들한테는 빈틈이 없어요. 쳇바퀴처럼 배움수렁(입시지옥)에 휩쓸려야 합니다.


  푸른별 한켠에서는 숲아이를 꾀어 사고파는 돈바라기 어른들이 있다면, 다른켠에는 서울아이·시골아이 모두 배움책(학습지)으로 짓눌러서 괴롭히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서울부터 숲으로 돌아가도록 갈아엎어야 합니다. 아이를 안 사랑한다면 서울도 시골도 잿빛으로 밀어붙이겠지요.


#CaroleZalberg

#Le jour ou Lania est partie

https://cafe.naver.com/hbooks/3954 (길게 쓴 느낌글)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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