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24 살림집
모든 집은 모름지기 모두 달랐습니다. 모든 사람은 모두 다르거든요. 푸른별에서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모두 같은 말을 썼다고 합니다. 오늘 눈길로 보자면 설마 싶을 테지만, 푸른별에 처음 사람이 깃들 무렵에는 날씨도 터전도 숲도 모두 같았을 테고, 살림도 같았을 테니, 말이 같았을 만합니다. 날씨에 터전에 숲이 다 다르다면 말이 다 다릅니다. 겨울에 흰눈이 없는 곳에 ‘눈’을 가리키는 말이 없어요. 늘 더운 곳에 ‘솜’이나 ‘이불’을 가리킬 말이 없겠지요. 우리나라는 조그마한 터라지만 고장마다 살림새가 달라서 말도 다릅니다. 이 살림에 맞추어 옷밥집도 달라요. 그런데 어느덧 모든 고장이 서울바라기로 흐르며 똑같은 잿빛집이 엄청나게 서고, 사람들 스스로 ‘똑같이 쌓은 집’에 깃들어 ‘똑같이 생긴 부릉이’를 몰고 ‘똑같이 셈틀맡에 앉아 돈을 법’니다. 살림집이라기보다 돈자리(부동산)로 흐르는 잿빛집인 터라, 다 다른 사람한테 다 다른 책이 아닌 ‘똑같은 잘난책(베스트셀러)’이 넘치고, ‘똑같은 잘난책’을 팔려는 마음이 자라요. 벼도 콩도 옥수수도 부추도 고장마다 날씨·흙·비바람해에 따라 다른데, 우리는 왜 똑같은 책을 읽으려 할까요? 더구나 ‘똑같은 책’이어도 ‘다 다르게 읽는 눈’마저 잃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