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배움빛 2022.6.11.

숲집놀이터 271. 보던 책만



  어릴 적에 어머니나 둘레 어른한테서 익히 들은 꾸지람 가운데 하나는 “왜 보던 책만 자꾸 보니?”이다. 나로서는 굳이 ‘새로운 책’을 들여다볼 마음이 없으니 ‘보던 책’을 다시 본다고 할 텐데, ‘보던 책’을 다시 쥘 적에는 ‘예전에 읽은 책을 또 본다’가 아닌, ‘언제나 새삼스레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책’을 기쁘게 손에 쥐어 ‘새빛’을 누린다고 느낀다. 아이도 어른도 온갖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하지는 않는다. 개미를 하루 내내 바라보아도 즐겁다. 나무 한 그루를 하루 내내 안아도 즐겁다. 가랑잎이 구르는 춤사위를 하루 내내 지켜보아도 즐겁다. 새끼를 먹이고 돌보는 제비를 하루 내내 살펴보아도 즐겁다. 하늘을 적시는 구름을 하루 내내 쳐다보아도 즐겁다. 풀을 베는 낫질로 하루를 보내어도 즐겁다. 종알종알 쉬잖고 수다꽃인 아이 곁에서 하루 내내 같이 춤추고 뛰놀아도 즐겁다. 스스로 마음을 살찌우는 일손을 붙잡으면 하루 내내 안 쉬어도 즐겁다. 이 마음으로 살아왔고 자라왔으니, 나는 우리말꽃(국어사전)이란 꾸러미를 엮느라 예닐곱 시간을 꼼짝않고 앉아서 뜻풀이를 추스르고 말결을 가누고 말밑을 캐내면서 지치거나 힘든 적이 없다. “아, 이제 하나를 마쳤구나!” 하고 기지개를 켜다가 하루(시간)가 훅 지나간 줄 알고서 빙긋 웃을 뿐.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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