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스무빛깔 무지개로 (2022.6.2.)

― 서울국제도서전 2022 스무빛깔



  어른은 가르치는 사람일 수 없습니다. 아이야말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어릴 적부터 이 대목을 알았어요. 그냥 저절로 알아요. 왜냐하면 어릴 적에 저는 ‘아이’였잖아요. 모든 아이는 “우리가 스스로 아이라서 어른을 일깨우고 가르치는 줄 압니”다. 아이는 아이다운 눈빛으로 보면서 말하지요. “저 어른은 있잖아, 말로는 착한 척하지만 뒤에서 구린 짓을 하더라.” “저 어른은 우리더러는 하지 말라고, 하면 나쁘다고 하면서, 그 나쁜짓을 혼자 다 하더라.” “저 어른은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몽둥이를 휘두르면 나쁘다고 말을 하는데, 그러면서 우리(아이)를 왜 때려? 참 못난 사람이야.” “저 어른은 늘 혼자만 떠들어. 우리 얘기는 하나도 안 들어. 우리 얘기를 안 듣는 사람은 어른 같지 않아.” “우리(아이)더러 지켜야 한다고 외치지 말고, 어른부터 스스로 잘 지키면, 우리는 어른을 보면서 잘 따라갈 텐데, 어른들은 스스로 안 지키는 일을 언제나 말로만 우리한테 시켜.”


  책이 태어나자면 여러 사람 손길이 듭니다. 이야기를 쓰거나 짓는 사람이 있고, 이야기를 살피고 받아들여서 여미는 사람이 있고, 여민 이야기를 읽기 좋도록 다듬는 사람이 있고, 읽기 좋도록 다듬은 이야기를 종이에 앉히는 사람이 있고, 이야기를 앉힌 종이를 추스르는 사람이 있고, 이야기꾸러미를 실어나르는 사람에 헛간에 건사하는 사람이 있고, 책집이란 이름으로 이야기꾸러미인 책을 맞아들여서 이웃한테 다리를 놓는 사람이 있고, 이야기꾸러미인 책을 알리는 사람이 있고, 이야기꾸러미인 책을 오래오래 건사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숲이 있어요. 해바람비를 곱고 푸르게 머금은 우람한 나무가 몸을 바쳐야 종이를 얻어요. 저도 책을 써내는 사람입니다만, 저 혼자 훌륭하기에 책을 쓰지 않습니다. 숱한 이웃님 손길을 사랑으로 받을 뿐 아니라, 이 푸른별에서 해바람비를 노래하는 숲한테서 사랑을 받기에 책을 쓰는 사람으로 섭니다.


  서울도서전은 ‘잘난이(유명작가)’ 서너 사람 이야기꽃(강연)을 넓게 펼치는 듯합니다. 그런데 ‘잘난이’를 모신 탓에 너무 커요. 잘난이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리니 책잔치판이 어수선합니다. 모름지기 책잔치라면 다 다른 책이 나란히 빛나도록 꾸릴 노릇이에요. 백이나 이백 사람까지 앉아서 잘난이 말을 듣기보다는, ‘꼭 스무 사람까지만 듣는 작은 책수다’를 ‘두 시간마다 스무 자리씩 작게 꾸린다’면, 하루에 ‘지음이(작가) 백 사람’이 ‘백 가지 책수다꽃’을 피울 만합니다. 닷새라면 자그마치 오백 지음이가 오백 가지 책노래를 부를 만해요. 지은이·엮은이·펴낸이·꾸민이·책집지기·책숲지기·책손·책마을 일꾼·말글지기·옮김빛·글바치(기자)가 고루 만나는 “스무빛깔 책무지개”로 거듭나길 빕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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