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5.29.

아무튼, 내멋대로 6 쓸거리



  남이 시키기에 써내는 글이 아닌, 스스로 우러나오면서 펼치는 글은 1990년에 처음 썼다. 날마다 새벽부터 밤까지 꽁꽁 가두어 배움수렁(입시지옥)에 밀어넣는 푸른배움터(중학교) 길잡이(교사)는 언제나 막말에 몽둥이질에 손찌검이었는데, 어머니 곁일(부업)을 도우려고 마을을 함께 돌며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를 하다가 본 글에 ‘청소년헌장’이란 글줄이 하나 보였고, 이튿날 배움터에 가서 물어보니 아무도 모르더라. “청소년을 가르친다는 어른이 어떻게 청소년헌장도 모릅니까!” 하고 따지면서 글붓집(문방구)에서 큰종이(2절지)를 사서 큰글씨로 “청소년을 함부로 때리지 말고, 청소년한테 함부로 욕하지 말고, 청소년을 입시지옥에 내몰지 말고 ……” 같은 이야기를 파란글씨로 열대여섯 줄 적어서 나들간(현관)에 붙였다. 이러고서 글종이 옆에 나란히 섰다. 그때 길잡이는 “이 새끼 뭐 하는 거야?” 하면서 머리통을 후려치더니 잡아떼려 했고, 나는 “선생님, 청소년헌장도 모르십니까? 학교에서 청소년헌장을 알려주지 않으니, 제가 써 보았습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욕하고 저를 또 때리고 이 글종이를 떼내려 하니, 청소년학대로 여겨 경찰에 신고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따졌다. 불그락푸르락하던 그이는 으뜸어른(교장선생)하고 한참 얘기하더니 ‘딱 이레(7일)’만 붙이고서 치우기로 하자고 얘기하더라. 이레 뒤 이 글종이를 손수 걷어서 건사하려 했더니, 그놈이 벌써 뜯어서 태웠더라. 이때 그놈(교사도 아닌 후레놈)이 ‘청소년헌장 글종이’를 박박 찢어서 불태우지 않았으면, 어쩌면 나는 굳이 글쓰기란 일을 안 했겠다고도 생각한다. 싸우자고 달려드는 글이 아닌, 삶을 삶대로 담고, 참말을 참말대로 옮기고, 사랑을 사랑대로 얹으면서, 살림을 살림대로 노래하기에 글이리라. 그리고 우리는 모두 다르면서 빛나는 숲(자연)이니, 스스로 얼마나 푸르게 빛나는 바람노래인가 하고 읽어내면서 한 올씩 담으면 글일 테지. 남을 쳐다보면 쓸거리가 없다. 스스로 나를 바라보면 모두 쓸거리로 피어난다. 우리 삶은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오롯이 삶이다. 모자라지도 나쁘지도 않다. 훌륭하지도 값지지도 않다. 언제나 새롭게 맞이하는 오늘이기에 천천히 하루를 되새기면서 글 한 줄로 마음을 다독인다고 느낀다. 숱한 꼰대(어른 아닌, 나이만 먹은 꼰대)는 아이들이 마음빛을 글로 수수하게 옮겨서 스스로 하루를 노래하는 길을 바라지 않는다. 숱한 꼰대는 아이들이 굴레에 갇히고 수렁에 잠겨 쳇바퀴를 돌기를 바란다. 그래서 숱한 꼰대는 아이들한테 잘난책(베스트셀러·세계명작)만 읽히려 한다. 숱한 꼰대는 아이들이 책집마실을 스스로 누리면서 저마다 마음을 밝힐 책을 스스로 살펴보고 챙겨서 ‘잘나지 않은 수수한 책’을 만나는 길을 안 바란다. 잘난책만 읽느라 꼰대한테 길든 아이들한테는 쓸거리가 없다. 남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온 사람한테는 삶이 없이 굴레·수렁·쳇바퀴만 있는걸. 심부름·시킴질을 떨쳐내고서 스스로 삶길을 일군 사람은 모든 하루가 쓸거리요, 노래이며, 빛살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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