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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낱말 수집 - 하늘에서 별뉘를, 산에서 모롱이를, 물가에서 윤슬을 줍는 나날
노인향 지음 / 자연과생태 / 2022년 4월
평점 :
숲노래 숲책 2022.5.26.
숲책 읽기 174
《자연 낱말 수집》
노인향
자연과생태
2022.4.21.
《자연 낱말 수집》(노인향, 자연과생태, 2022)을 가만히 읽었습니다. 저는 영어 ‘내추럴’도 한자말 ‘자연’도 아닌, 우리말 ‘숲’을 말하고 노래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영국이나 미국에서 안 태어났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안 태어났거든요. 그저 이 나라 조그마한 골목마을에서 조그맣게 태어나서 살았기에 조그마한 아이로서 둘레를 품을 풀빛이고 꽃빛이고 나무빛이 어우러진 숲빛인 말을 살핍니다.
어릴 적에 날개꽃(우표)을 곧잘 모았습니다. 여덟아홉 살 어린이가 “날개꽃 모으기”를 한다고 말하면, 그무렵에는 아직 ‘날개꽃’이란 말을 몰라 “우표 모으기”라 말했습니다만, 둘레 어른들은 ‘고상한 한자말’을 끼워넣어 “우표 수집”이라고 일컬었습니다.
모으기에 ‘모음·모으기’인데 예나 이제나 숱한 어른들은 우리말을 쓰기보다는 ‘수집’이나 ‘-집(集)’이란 일본스런 한자말씨에 스스로 갇힌다고 느껴요. 이제부터는 우리 스스로 우리 눈길을 틔워 우리 나름대로 우리 보금자리를 푸르게 사랑하는 살림길을 펴는 숲말을 헤아리면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워 사랑으로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숲말을 짚는 《자연 낱말 수집》을 읽다 보면 “호랑이는 범이라고도 하지요(81쪽)” 같은 대목이 있는데, 그냥 틀렸습니다. “범을 한자로 구태여 옮겨 ‘호랑’으로 적은 먹물이 있었다”라 해야 올바릅니다. “감쪽은 감접에서 변한 말이라는 의견입니다 … 소리는 감접같다>감쩝같다>감쩍같다>감쪽같다로 변했다고 추측합니다(22, 23쪽)” 같은 대목에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숲말은 숲으로 수수하게 헤아리기를 바라요. ‘의견’이나 ‘추측’이 아닌 ‘생각’을 하면 어느새 저절로 누구나 실마리를 찾아냅니다. ‘쪽’이란 ‘켠’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조각’을 가리키기도 하고 ‘얼굴’이기도 하며, ‘곳’이나 ‘자리’도 가리키면서, ‘쪽빛 물들이기’처럼 ‘쪽’이라는 들풀이 따로 있기도 합니다.
우리말은 우리말일 뿐이니, “우리말치고는 꽤 발음이 이국적이다 싶었는데(109쪽)” 같은 대목은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무녀리라는 말은 문을 연다는 뜻인 ‘문열이’에서 비롯했다는데(111쪽)” 같은 대목은 아쉽습니다. ‘문열이’라고 넘겨짚어도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우리말 ‘물·무르다’하고 ‘여리다·가녀리다·가냘프다·얇다·엷다·옅다·어리다’를 가만히 짚으면 얼마든지 수수께끼를 풀어냅니다.
그리고 “그런데 반전(?)은 살찌니가 살찐 고양이를 뜻하는 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부산 방언의 어원 연구’에서는 살찌니를 ‘삵+진(陳)+이’, 그러니까 ‘삵을 길들인 것’으로 풀이합니다(127쪽)” 같은 대목에서는 그만 책을 덮었습니다. 숲에서 태어나 숲에서 자라던 아스라한 옛사람은 임금이나 붓바치(지식인)처럼 한자로 장난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살림을 짓고 아이를 낳아 사랑하면서 저마다 사투리로 말꽃을 피웠어요. ‘살지다·살찌다’에서 ‘지다·찌다’가 얼마나 넓고 깊고 푸르게 우리 살림살이를 살살 어루만지는가를 들여다보기를 바라요. 낱말책(사전)에 숨은 낱말을 뒤적여도 안 나쁘지만, 이보다는 우리가 스스로 맨발에 맨손에 맨몸으로 숲에 깃들면 돌이며 바위에 나무에 냇물에 샘에 빗방울에 구름에 바다 같은, 또 바람하고 하늘 같은, 그냥그냥 아이어른 모두 쉽고 상냥하며 부드러이 쓰는 삶말(생활용어)이 어떻게 태어나서 우리 눈길을 깨웠는지 잘 알 만하리라 봅니다.
자연을 안 봐도 돼요. 숲을 보면 돼요. 이뿐입니다.
ㅅㄴㄹ
큰 벌을 그저 큰 벌, 속껍질을 그냥 속껍질이라 부른다고 나쁠 건 하나 없습니다. 다만, 칭퉁이나 보늬 같은 우리말을 하나둘씩 알 때마다 아쉬웠습니다. (11쪽)
토로래, 도로랑이, 물개아지, 무송아지, 논두름망아지, 버버지, 개밥통, 가밥도둑, 하늘밥도둑. 모두 땅강아지를 이르는 말입니다. 비규범 표기로 사전에 오른 이름만 이만큼이고 사투리까지 더하면 훨씬 많습니다. (100쪽)
자연 낱말 찾기는 꼭 ‘숨은 사랑스러운 낱말 찾기’ 같습니다. (12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