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잇는 실 (2022.1.21.)

― 서울 〈숨어있는 책〉



  한때 서울에서 살며 날마다 두서너 곳에 이르는 책집으로 마실을 다닐 적에는 책집지기님이 “왔어?”나 “왔나?”나 “오셨나?” 하고 얘기했고, 시골에서 살며 드문드문 책집마실을 하는 오늘날에는 “오랜만이네.” 하고 얘기합니다.


  두 다리로 찾아가기로는 오랜만이지만, 마음으로는 늘 생각합니다. 몸으로는 한 해에 한 걸음을 하기조차 만만하지 않더라도 마음으로는 언제나 곁에 있는 이웃으로 여깁니다. 작은아이하고 마실길을 나서며 생각했습니다. 새책집이라는 곳은 새롭게 피어나는 길을 잇습니다. 헌책집이라는 데는 오래도록 숨쉬는 길을 이어요.


  어른아이는 새롭게 사랑하는 길을 잇는 사이입니다. 아이어른은 새롭게 살림하는 길을 짓는 사이예요. 둘은 함께 살림을 지으면서 서로 빛납니다.


  어쩌면 ‘크게 안 바뀌었다’고 하는 작은 손길이야말로 하루를 새롭게 가꾸는 즐거운 숨빛이지 싶어요. 참말로 확 바꾸면 오히려 못 알아보더군요. 살짝살짝 바꿀 적에는 문득문득 알아보지만 모든 앙금하고 멍울을 스스로 녹여내어 반짝반짝 사랑숨으로 거듭나고 나서는 ‘누구였는지’ 못 알아차려요.


  아직 손이 얼어붙을 만한 날씨에 〈숨어있는 책〉에 깃듭니다. 책을 읽다가, 손을 비비다가, 다시 책을 읽다가, 손을 주머니에 꽂다가, 또 책을 쥡니다. 왜 겨울에 손이 얼면서까지 책을 살피나 하고 돌아보다가, 여름에는 더위가 아닌 환한 빛살을 떠올리자고 생각하고, 겨울에는 추위가 아닌 하얀 눈밭을 그리자고 생각합니다. 왜 자꾸 책을 더 읽는지 따지기보다는, 오늘 만나는 이 책한테 오롯이 마음을 기울이면서 스스로 갈고닦자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물’보다는 ‘숲짐승·들짐승’이란 이름을 씁니다. ‘숲넋·들넋’이란 이름도 쓰고, 때로는 ‘풀빛·푸른빛’이라고도 합니다. ‘이웃’이나 ‘숨결’이라고도 해요. 한자말 ‘동물’이 나쁠 까닭은 없되, 이 낱말만으로는 우리 둘레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빛을 놓치기 쉽구나 싶어요.


  책이란 무엇인가요. 책빛이란 무엇일까요. 틀림없이 나무로 짓는 종이인 줄 아는 사람이 많고, 나무는 숲이 우거진 곳에서 푸른 줄 알 텐데, 참말로 “책빛 = 숲빛 = 나무빛 = 풀빛”이라는 대목을 이어서 생각하는가요? 아니면 부스러기(지식·정보·이론)로만 책을 손에 쥐는지요?


  눈을 감고서 바라보면 서울 한복판에서도 별빛을 느낍니다. 눈을 감고서 책을 쥐면 그동안 누구 손길을 타면서 빛나다가 오늘 제 곁으로 왔는지 느낍니다. 눈을 감고서 글을 쓰면 허울이나 치레가 아닌 오롯이 사랑으로 이야기를 엮습니다.


ㅅㄴㄹ


《空と風と星と詩》(尹東株 글/金時鐘 옮김, 岩波書店, 2012.10.16.첫/2016.8.4.5벌)

《春園文庫 7 사랑의 東明王》(이광수 글, 문선사, 1955.10.30.)

《女性의 思索을 돕는 世界名言百選》(김성한 엮음, 동아일보사, 1969.6.1.)

《美國思想의 起源 上》(W.O.클로우 엮음/김영국 옮김, 사상계사, 1963.12.1.)

《完譯 牧民心書》(정약용 글/원창규 옮김, 신지사, 1956.8.27.)

《가시연꽃》(이동순 글, 창작과비평사, 1999,11.20.)

《다이어먼드가 나오는 땅》(김성배 엮음, 언어문화사, 1976.10.25.)

《詩와 意識 16호》(소병학·박희선 엮음, 시와의식사, 1980.8.30.)

《八峰 水滸誌 第五卷》(김팔봉 글, 어문각, 1966.9.30.)

《第三次 世界大戰과 예수 그리스도의 再臨》(高木慶太 글/홍순린 옮김, 생명의말씀사, 1981.7.15.)

《高銀全集 13 세노야 세노야》(고은 글, 청하, 1990.3.30.)

《터앝 8 누이, 동맹, 맞잡은 손》(조선대학교 터앝문학동인회, 새날, 1991.3.30.)

《朴景利文學全集 11 金藥局의 딸들》(박경리 글, 지식산업사, 1980.2.28.첫/1988.5.25.둘)

《성서 속의 붓다》(로이 아모르 글/류시화 옮김, 정신세계사, 1988.8.18.)

《이슬 꿰는 빛》(리성비 글, 연변인민출판사, 1997.1.)

《계몽사문고 55 비밀의 화원》(버어넷 글/이규직 옮김, 계몽사, 1987.1.30.중판)

《미안해 미안해》(김수현 글, 연희, 1979.3.10.)

《삼별초의 넋》(문선희 글, 제은경출판사, 1978.10.1.)

《새로운 文章作法》(손동인 글, 창조사, 1974.5.25.)

《讀書術》(에밀 파게 글/이휘영 옮김, 서문당, 1972.7.10.)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1》(김인숙 글, 세계, 1987.9.15.)

《다이아먼드가 나오는 땅》(김성배 엮음, 언어문화사, 1976.10.25.)

《女性의 思索을 돕는 世界名言百選》(김성한 엮음, 동아일보사, 1969.6.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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