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5.23.

아무튼, 내멋대로 1 오만 원



  집이 아닌 데에서 자며 돈을 낸 적은 1994년이 처음이다. 그때 나는 길손집에 돈을 치르고 자느니 새벽 네 다섯 시 언저리까지 버텨서 첫 버스나 전철로 집(인천 또는 서울 이문동에 있는 신문사지국)에 들어가려 했다. 길에서 잔다든지 전철나루 걸상에 누워서 자기도 했다. 왜 그랬느냐고 물으면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로 건너가는 그무렵에는 참말 살림돈이 없었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돌아갈 전철삯 650원이 없어서 두어 시간을 전철길을 따라 걸어가곤 했다. 대학교 1학년이던 그무렵 1500원을 받는 ‘대학교 학생식당 식권’이 비싸 수돗물로 배를 채웠고, 이따금 900원 즈음 하는 싸구려 짜장국수가 나오면 먹곤 했다. 보다 못한 윗내기(선배)가 밥종이(식권)을 사주어 끼니를 때운 날이 꽤 있는데, 그때 나는 “밥을 사먹을 돈이 있으면 헌책집에서 책 한 자락을 더 산다”는 생각이었다. 밥종이를 사주는 윗내기는 늘 고마웠는데, “선배님, 식권 사주실 돈으로 책값에 보태주시면 더 고마울 텐데요.” 하고 말하다가 뒷통수를 숱하게 맞았다. 1994∼95년에는 500원에 책 한 자락을 살 수 있었고, 때로는 300원에 살 수 있는 책이 있었다. 서울 어느 헌책집에서는 150원에도 책 한 자락을 샀다. 더 눅게 파는 헌책집을 찾아 한두 시간쯤 가볍게 걸어서 찾아갔고, 헌책집에서 책 열 자락을 읽고서야 한 자락을 겨우 샀다. 그러나 이렇게 책을 살 적에는 ‘지내는 곳’인 ‘신문사지국’으로 돌아갈 길삯이 없어서 한밤에 두 시간쯤 가볍게 걸었는데, 한밤에 신문사지국으로 걸어가는 길에 거리등(가로등) 불빛에 기대어 책을 읽었다. 1995년 11월 6일에 군대로 끌려갔는데 그때까지 참 자주 들은 말이 “너 미쳤니?”이다. 난 “왜요?” 하고 대꾸했고, 또래나 윗내기는 “야, 그냥 전철 타고 집(신문사지국)에 가면 되지. 왜 걸어?” 하고 묻는다. 나는 “500원이면 책 하나 살 수 있고, 650원이면 150원을 석 벌 모아서 책을 한 자락 더 살 수 있어.” 하고 말하니 “이놈 참말 미쳤네.” 하고 말하더라. 윗내기(선배)가 술을 마시자며 부르면 늘 “선배님, 술은 안 사주셔도 되고, 책을 사주시면 안 될까요?” 하고 날마다 물었다. “뭐? 이런 미친놈을 봤나. 그냥 술 처먹어.” 윗내기는 소주를 두 병 비울 때까지 안 놓아주었다. “선배님, 이제 (소주) 두 병 마셨으니 돈 좀 보태 주세요.” “무슨 돈? 내일 점심 사먹게? 아니면 당구 치게?” “아뇨. 헌책집에 가서 책 좀 사읽게요.” “뭐? 이놈이 안 취했네. 더 마셔!” 2020년대로 접어든 책집은 저녁 아홉 시이면 다 닫는다. 그러나 1994∼95년에는 밤 12시에도 아직 안 닫은 헌책집이 꽤 있었다. 나는 20∼21시 무렵이면 술집에서 살며시 달아나 헌책집에 갔고, 한 시간 남짓 책을 보고 서너 자락 사서 슬그머니 술집으로 돌아왔다. 책은 옷자락에 숨겼지. 윗내기는 “야! 너 어디 갔다 왔어? 화장실에서 빠져죽은 줄 알았잖아!” “잘못했습니다.” 윗내기한테 붙잡혀 새벽 한두 시까지 술집에 엉겨붙어야 하면 집에는 마땅히 못 돌아간다. 곯아떨어진 윗내기를 마주보다가 슬그머니 책을 꺼낸다. 아까 몰래 빠져나가 헌책집에서 사온 책이다. 술집이 닫을 때까지 조용히 책을 읽었다. 이제 술집이 닫는다고 하면, 곯아떨어진 윗내기를 업거나 어깨동무하고서 그이네 집(자취집)이나 동아리방이나 과방에 데려다준다. 이 결에 나도 그곳에 깃드는데, 술에 절어 곯아떨어진 윗내기 버선(양말)을 벗겨 주고, 살살 이불을 덮어 준다. 이러고서 나도 발을 씻고 낯을 씻은 다음, 아까 읽다가 덮은 책을 마저 읽는다. 동이 틀 즈음 머리를 감고서 윗내기네 집(자취집)에서 나온다. 동아리방이나 과방이라면 밖에 나가서 나무 곁 걸상에 앉았다. 아무튼 윗내기네 집에 간 날은 조용히 동아리방이나 과방에 새벽 여섯 시 무렵에 가서 ‘어제 산 책’을 마저 다 읽고서 살며시 눈을 붙인다. 이윽고 아침 여덟 시 삼십 분 즈음이면 동아리방이나 과방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고, 이때 비로소 기지개를 켜고서 하루를 새로 맞이한다. 이런 나날을 보낸 1994년 어느 여름날 ‘여인숙’이란 데를 처음 갔고, 그날 쓴 5000원이 얼마나 아까웠는지 모른다. 길잠(노숙)을 잔 적이 없다는 또래가 길에서 어떻게 자느냐며 바득바득 길손집에 가자고 해서 피같은 돈을 쓴 날이었다. 헌책집에서 적어도 열 자락을 사서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속이 한참 쓰렸다. 이런 젊은 날을 보낸 주제에 2022년 여름을 앞둔 5월 끝자락에, 서울 명동 길손집에서 5만 원을 치르고 묵는다. 얼추 서른 해쯤 앞서라면 어림도 없을 길손집인데, 서울 명동 길손집은 책상이 훌륭하다. 하룻밤에 25000∼35000원에 묵을 길손집이 신촌에 있는 줄 알지만, 이제는 ‘책상 없는 길손집’에 묵기 싫다. ‘책상이 크고 튼튼한 길손집’에서 밤새 느긋하면서 즐겁게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싶다. 책을 몇 자락 덜 사더라도, ‘읽기만 하는 사람’이 아닌 ‘쓰기를 함께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자니, 또 ‘아이를 이끌고 길손집에 묵을 날’을 헤아려 ‘아이들이 느긋이 머물 만한 길손집인가 아닌가’를 돌아보면서 하룻밤 잠값을 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숲노래 씨는

늘 착한말로 착한글만 쓴다고 말씀하는 분이 많아

참말로 착하게 살았나 모르겠어서

“아무튼 내멋대로”란 이름으로

아무튼 내멋대로 살아온 나날을

갈무리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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