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본주의를 말한다
우네 유타카 지음, 김형수 옮김 / 녹색평론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2022.5.11.

인문책시렁 221


《농본주의를 말한다》

 우네 유타카

 김형수 옮김

 녹색평론사

 2021.3.12.



  《농본주의를 말한다》(우네 유타카/김형수 옮김, 녹색평론사, 2021)를 읽었습니다. 뜻깊은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농본주의’라는 일본말을 떨치지 못하는 글이란 이 땅에 뿌리를 못 내리겠다고 느낍니다. 곰곰이 보면 ‘녹색평론’ 같은 펴냄터 이름도 그냥 일본말입니다. 우리말이 아닙니다.


  우리말이 아니라 할 적에는, 이 땅에서 스스로 씨앗이 뿌리를 내려서 퍼진 말씨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일본말 ‘녹색평론’을 우리말로 옮기자면 ‘푸른수다·풀빛수다’나 ‘푸른얘기·풀빛얘기’나 ‘푸른소리·풀빛소리’일 테고, 더 살피면 ‘숲얘기·숲노래·숲소리’로 여길 만합니다.


  일본말 ‘농본주의’를 우리말로 바라본다면 먼저 ‘논밭살림·밭살림’입니다. 이다음으로 ‘그루’요, ‘들살림·시골살림·흙살림’처럼 새말을 지을 만합니다. 일찌감치 이 대목을 깨달아 ‘한살림’이란 우리말을 지은 분이 있어요. 우리는 ‘주의자·홀릭·신자·광신도’가 아닌 ‘살림꾼·살림이·살림벗’으로 나아갈 적에 참말로 살립니다. ‘기우는 사람(주의자)’일 적에는 이웃이 들려주는 말도 등지지만, 풀꽃나무가 속삭이는 이야기도 손사래치더군요.


  논밭을 가꾸는 길을 들에서 살피는 사람은 논밭말이나 들말을 씁니다. 논밭도 들도 시골도 숲도 아닌 서울(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주 마땅히 서울말(표준말)을 쓸 텐데, 이 서울말은 딱딱말(경직된 학술용어)에 갇혀요.


  들꽃을 봐요. 들꽃이 갇히나요? 들풀을 봐요. 들풀이 가두나요? 나무는 사람을 안 괴롭힙니다. 모래알이나 냇물도 사람을 들볶지 않아요. 오직 사람만 풀꽃나무를 짓밟고 모래밭도 냇물도 억누릅니다. 우리가 나아갈 길이나 바라볼 곳은 ‘농본주의’ 아닌 ‘들빛’이기를 바라고, 일본한테서 배우더라도 일본말씨는 걷어내고 우리말씨를 투박하게 흙을 만지면서 아이하고 처음부터 하나씩 새롭게 짓기를 바랄 뿐입니다.


ㅅㄴㄹ


김매기를 하기 때문에 풀들의 이름을 부르고, 풀들의 모양새로부터 천지자연을 읽고, 논과 밭의 특성을 파악하고, 생물들의 생사의 감각을 배우며, 무엇보다도 일에 몰두하여 천지자연과 일체가 되는 경지를 체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인데, 이런 것들에는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25쪽)


위정자가 말하는 ‘농사는 나라의 근본’이란, 조세의 원칙, 즉 국부로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농민의 인생에 입각한 농본주의는 그것과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67쪽)


본래 농사일은 혼자 하는 일도 많지만 고독을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농민은 혼자라고 해도 그 상대가 되는 생명들이 주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농민들은 고독을 느끼게 된 모양입니다. 함께 일할 사람도 없어지고, 상대가 되는 생명들을 느끼는 시간도 없어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96쪽)


예전에는 저도 논두렁에 있는 풀들의 이름을 잘 몰랐기 때문에, 빨리 베어버리자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풀이름을 알기 때문에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르면서 풀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17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일본말씨를 이제 와서 어떻게 바꾸냐고

말하는 분이 제법 있으나

그 핑계가

10년 20년 30년이 쌓이면

더 못 바꾸겠지.


오늘부터 바꾸면

앞으로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눈부시게 피어난다.


오늘부터 바꿀 일이다.

흙일이며 들일도 똑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