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5.6.

숨은책 680


《李守一과 沈順愛》

 허문영 글

 선경도서출판사

 1972.4.15.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려니 모든 책을 안 가립니다. 곳곳에서 우리말을 어찌 쓰나 살핍니다. 《李守一과 沈順愛》를 헌책집에서 만나던 날, 굳이 살펴야 하나 싶어 지나치려다가 뽑아들었어요. 책끝에 “一九七二年八月二十三日, 南大門驛前에서 金八十五원에 買入”이란 손글씨가 깃들어요. 1972년에 갓 나온 책을 싼값에 넘긴 셈이라 알쏭하더군요. 곰곰이 짚자니, 조중환 씨가 1913∼15년에 〈매일신보〉에 실은 《장한몽(長恨夢)》이요, 이 글은 일본사람 오자키 코요(尾崎紅葉) 씨가 1897∼1902년에 〈讀賣新聞〉(요미우리신문)에 실은 《金色夜叉》를 훔쳤다는데, 이 글은 또 영국사람 버서 클레이(Bertha M.Clay) 씨가 쓴 《Weaker than a woman》를 훔쳤다지요. ‘오늘눈’으로는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도둑놈입니다. ‘어제눈’으로는 아랑곳않았다지만, 오늘뿐 아니라 어제에도 ‘내 글’을 쓸 생각을 안 하고 ‘남 글’을 슬쩍하는 짓을 거리끼지 않는다면, 그이 자취는 창피한 얼굴로 남을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살아내면서 살림을 짓는 눈빛이라면 두고두고 읽힐 이야기요 노래를 펴기에 사랑을 물려줄 만해요. 이웃을 달래고 아끼는 손길일 적에 스스로 삶글을 짓는다고 느낍니다. 그나저나 이 책을 낸 곳마저 또 도둑질이었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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