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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 29
이마 이치코 지음, 한나리 옮김 / 시공사(만화) / 2022년 3월
평점 :
숲노래 만화책 2022.5.5.
늙고 젊고 살고 죽고
《백귀야행 29》
이마 이치코
한나리 옮김
시공사
2022.3.25.
《백귀야행 29》(이마 이치코/한나리 옮김, 시공사, 2022)을 폅니다. 그림꽃님은 1995년부터 “百鬼夜行抄”를 그렸으니, 2022년이면 어느덧 스물여덟 해째 잇는 그림꽃입니다. 그리는 사람도 대단하고, 꾸준히 챙겨서 읽는 사람도 대단합니다. 다만, ‘깨비밤길(백귀야행)’을 붓끝으로 담아내는 분이 갈수록 눈이 어둡고 몸도 뻑적지근하다고 하니, 서른 해는 가볍게 넘길 듯하지만 마흔 해까지 그리실 수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이야기를 끝낼 듯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이으면서 줄거리가 흐릅니다. 숱한 깨비한테 둘러싸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삶길을 헤매는 ‘이이지마 집안’ 사람들을 다루는데, 이이지마 집안 사람들은 ‘깨비를 맨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을 둘러싼 여느(?) 사람들은 ‘깨비를 맨눈으로 못 볼’ 뿐 아니라 ‘몸으로도 못 느끼기 일쑤’입니다.
맨눈으로 ‘깨비(유령·혼령·귀신)’를 보는 사람이 많을는지, 아니면 못 보는 사람이 많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깨비를 맨눈으로 봅니다. 우리 집 아이들도 깨비를 맨눈으로 봅니다. 우리 집 곁님은 깨비를 맨눈으로 못 보고 몸으로도 못 느낍니다. 깨비를 맨눈으로 못 보고 몸으로도 못 보지만 ‘깨비가 있는 줄 알’거나 ‘깨비가 사람하고 어떻게 얽히는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맨눈으로 못 보고 몸으로도 못 느끼기에 ‘깨비란 없다’고 금을 긋느 사람이 있습니다.
요새는 흔히 ‘과학·비과학’으로 가르는 듯한데, 과학은 무엇이고 비과학은 또 무엇일까요? ‘과학’이란 이름을 내세워 “깨비는 없어!” 하고 자르면 끝일까요? 사람들이 맨눈으로 못 보더라도 ‘자외선·적외선’은 있습니다. ‘감마선·베타선’도 있어요. 그리고 어떤 사람은 맨눈으로 ‘자외선’도 ‘감마선’도 봅니다.
저는 앞으로도 그림꽃책 《백귀야행》을 읽고 싶습니다. 이 그림꽃책을 빚는 이마 이치코 님이 그리는 《문조님과 나》도 한글판으로 새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림꽃님이 담아내는 이야기에는 우리가 ‘어떤 눈’으로 이 삶터를 ‘어떤 마음’으로 달래면서 돌아보거나 누리거나 어우르는가 하는 줄거리를 들려주어요. 맨눈으로 깨비를 못 보는 몸이라고 해서 함부로 ‘비과학’이란 이름을 붙이면 스스로 눈썰미를 갉아먹는 바보짓이라고 느낍니다.
생각이 없어 늙고 싶은 사람은 늙고, 철없기를 바라는 사람은 내내 젊고, 꿈을 그리는 사람은 언제나 싱그럽게 살고, 꿈이 없이 쳇바퀴에 얽매이는 사람은 그저 죽습니다.
ㅅㄴㄹ
‘어른들은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 얘기를 한다.’ (6쪽)
“저 유령한테 커피를 내간 건가요? 이이지마 씨, 당신.” “네. 왜요?” “아니, 별로 안 무서워하는구나 싶어서.” ‘무서워요, 충분히.’ (25쪽)
“꿈을 꾸면 꿈속에서 아야네의 이름이 절대 생각나지 않아. 구해 주고 싶은데 다리가 안 움직여.” “즈카사 누나, 지쳤구나. 그건 기억하지 않는 게 좋다는 뜻이 아닐까? 죽어버린 사람 일을 계속 생각하다 보면, 쓸데없는 것까지 불러들이고 말아.” (35쪽)
“여기까지 와서 사명을 다하지 못하다니, 원통하도다. 한데, 왠지 몸이 가볍군.” “넌 자유야. 괜찮아. (나비로서) 다리 하나가 남아 있으니 꽃에도 앉을 수 있고, 자오에도 갈 수 있어.” (78쪽)
저주는 남쪽 하늘로 돌아갔다. 실패한 저주는 저주를 건 술사에게로 돌아가며, 본래 힘의 두 배가 되어 술사를 덮친다고 한다. (79쪽)
그녀는 또다른 나였다. 하마노 집안의 된장 통 바닥에서 세 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5년 전 경찰이 한 차례 조사했던 장소였다. 오직 한 명, 장녀인 토와만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분명 어딘가에 무사히……. (222쪽)
#今市子 #百鬼夜行抄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