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빛

곁말 49 나



  저(나)는 겨울 첫머리인 12월 7일에 태어납니다. 어릴 적에 달종이를 보면 이날 ‘大雪’처럼 한자로만 적혔어요. “어머니 내가 태어난 날에 적힌 이 글씨가 뭐예요?” 하고 여쭈면 “‘대설’이란 한자야. ‘큰눈’이란 뜻이고, 눈이 많이 온다는 날이야.” 하고 들려주었습니다. 그무렵 ‘대설 = 대설사’로 여기며 말장난을 하는 또래가 있어요. 한자로만 보면 ‘대설사 = 큰물똥’이니, 어른들은 왜 철눈(절기)을 저런 이름으로 붙였나 싶어 툴툴거렸어요. 누가 12월 7일이 무슨 철눈이냐고 물으면 으레 ‘큰눈’이라고만 말했습니다. 12월 22일에 있는 다른 철눈은 ‘깊밤’이라 했어요. 또래가 짓궂게 치는 말장난에 안 휘둘리고 싶기도 했고, 한자를 모르는 또래도 쉽게 그날을 알기를 바랐어요. 겨울에 태어나 자랐기에 얼핏 차갑다 싶은 겨울이 마냥 춥지만 않은 줄 알았어요. 추위(겨울)가 있기에 봄이 있거든요. 모두 얼어붙고 하얗게 덮으며 새해 새꿈을 그리기에 새날(설날)을 맞이해요. 배움터는 봄부터 다시 열지만, 삶은 겨울 한복판부터 열어요.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어 아이를 맞이한 뒤엔 아이들을 토닥이고 별노래를 지어서 들려주었습니다. 겨우내 포근히 자고 봄내 실컷 뛰놀자는 자장노래를 부르며 밤새 하루를 그려요.


나 : 바로 여기에서 이 몸을 움직이고 이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나. 저기에서 저 몸을 움직이고 저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너. ‘나’를 바탕으로 ‘나(나다)’고 ‘나오(나오다)’고 ‘낳(낳다)’고 ‘내(내다)’고 ‘내놓(내놓다)’고 ‘나아가(나아가다)’고 ‘난’(날다)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