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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둔다 ㅣ 상추쌈 시집 1
서정홍 지음 / 상추쌈 / 2020년 10월
평점 :
숲노래 노래책/숲노래 시읽기 2022.3.28.
노래책시렁 225
《그대로 둔다》
서정홍
상추쌈
2020.10.5.
순이는 어머니 자리에 서고, 돌이는 아버지 자리에 섭니다만, 어쩐지 아버지 자리에 서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돌이는 드뭅니다. 《58년 개띠》에 이은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노릇은 해야지요》를 스물 몇 해 앞서 읽으며 글돌이라면 이쯤은 헤아릴 노릇이라고 여겼습니다. 《윗몸 일으키기》를 읽으며 노래꽃을 이렇게 쓸 줄 아는 사람이 있어 반가웠어요. 그러나 ‘개띠’ 이야기를 자주 들추는 글은 갈수록 제자리걸음 같더군요. ‘개띠’가 아닌 ‘사람’을 짚으면서 ‘노래로 적는 말’에 ‘숲빛으로 푸르게 나아가도록’ 가다듬는 길로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한다고도 느꼈습니다. 《그대로 둔다》를 한 해 남짓 묵히고서 읽었습니다. 밭살림이랑 집살림을 꾸리는 글은 예나 이제나 싱그럽지만 ‘문학스럽거나 시다운 글’로 여미려 애쓰기보다는, ‘일하는 투박한 손끝’을 고스란히 담으면 될 텐데 싶어요. 마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풀벌레노래에 귀를 열면서, 바람소리를 가만히 받아들이면 노래는 언제나 저절로 피어납니다. 서정홍 님 글에 ‘것’이 자주 나오는데, 이 ‘것’을 모조리 덜어 보기를 바라요. “얼마나 많은 내공內功을 쌓았을까(121쪽)” 같은 대목도 글치레입니다. “얼마나 많이 속빛을 쌓았을까”쯤으로 적으면 되어요.
ㅅㄴㄹ
벽에 자랑처럼 걸린 / 아주 오래된 / 국민학교 6년 개근상을 바라보며 /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 그 여섯 해 동안 / 아버지가 몹쓸 병으로 돌아가시고 / 어머니가 영양실조로 쓰러지시고 / 단짝 친구가 교통사고로 입원을 하고 …… // 곁에서 함께하지 못하고 / 개근을 했다는 게 / 문득 우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때늦은 웃음/28쪽)
미리 말을 못 한 형수도 잘못이지만 / 어쨌든 아침부터 큰소리로 나무란 건 어머니잖아요 / 어머니가 그 사연을 잘 몰라서 그랬겠지만도 / 그래도 어머니가 먼저 형수한테 사과하면 좋겠어요 / 전화로 하지 말고 직접 만나서 / 얼굴 마주 보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좋겠어요 (안부 그리고 공부/1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