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핑크스의 코
리영희 지음 / 까치 / 1998년 11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스핑크스의 코
- 글쓴이 : 리영희
- 펴낸곳 : 개마고원(1998.11.30.)



 우리 나라에는 아직 공안부서 경찰이 있습니다. 아직 있을 뿐 아니라 꽤 많이 있는 듯하며, 요즘 들어 실적 올릴 일이 없어진 탓에 부서 예산이 줄어드는 일과 정리해고 되는 일에서 벗어나고자 동네 헌책방 일꾼을 ‘좌경용공사범’으로 몰아붙이며 들볶습니다.

 동네 헌책방을 들볶는 일을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을 테며, 자기들로서는 언제나 들이밀기 좋은 ‘국가보안법’이 있기 때문에, 동네 헌책방은 아주 만만합니다. ‘동네 헌책방에서 사고팔아서 말썽이 된다’고 공안부서 경찰이 말하는 ‘불온 이념도서’는 ‘교보문고 같은 새책방에서 팔린 뒤, 이 책을 사서 본 이가 내놓아서 헌책방에 들어온 책’입니다. 공안 경찰은 헌책방 일꾼을 붙잡아서, “이 책을 어디서 사 왔느냐? 누구한테 팔았느냐?” 하고 심문합니다. 하지만 헌책방 일꾼이 누구한테 언제 샀는지 하나하나 떠올릴 수 없는 노릇. 고물상에서 뭉텅이로 주워 온 책들을 어찌 낱낱이 떠올릴 테며, 이 책들이 누구한테 팔렸는지 어찌 하나하나 되새길 수 있을까요. 공안 경찰들이 ‘어디에서 흘러나온 책’인가 알고 싶다면,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와 알라딘과 예스24와 인터파크와 …… 이런 새책방 ‘판매명단’을 압수하면 될 일입니다. 교보나 영풍 같은 곳 ‘마일리지 카드’를 압수해도 손쉽게 쭉 뽑아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말썽이 되어야 한다면, 맨 처음 새책방에서 이 책을 사서 읽은 사람들이 말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아가, 이런 책을 펴내어 시중에 내놓은 출판사가 말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 이런 책을 써낸 사람(지은이)들이 말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책이 나왔을 때 ‘좋은 책 나왔으니 사서 읽으시오’ 하고 소개글을 썼던 기자와 교수들이 말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도 시중 새책방에 깔려 있는 《스핑크스의 코》 같은 책은 ‘빨갱이 리영희’가 썼다고 해서 ‘불온 이념도서’라고 도장을 찍습니다. 제법 널리 읽혀서 웬만큼 ‘책 좋아하는 사람’ 집에는 다 꽂혀 있을 뿐 아니라, 이 책을 안 꽂아 둔 도서관이 없고, 리영희 교수 만나보기를 안 해 본 언론매체도 없으나, 공안 경찰은 오로지 하나, ‘한 놈만 팬다’는 법칙(?)을 따라서, 가장 힘없고 이름없고 돈없는 동네 헌책방만 겨냥합니다. 우리들은 우리들대로 ‘아직 국가보안법이 있었어?’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네’ 하며 혀를 차거나 ‘그깟 헌책방에서 일어난 일인데, 뭐’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빨갱이’ 리영희 교수가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 소비주의적 자본주의 경제의 유행 창조자들은 젊은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드러내보임으로써 ‘풍요한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여성이 배꼽을 드러내거나 반나체가 되는 새 유행의 옷을 남보다 먼저 걸치는 것을 ‘여성 해방’의 ‘실천적 행위’로 미화하는 소비주의 경제와 그 광고산업의 돈줄을 장악하고 잇는 것은, 압도적으로 남성들이다. 경제력을 지배하고 있는 남성들이 여성의 육체에 수백만 원짜리 옷을 입혔다 벗겼다 하거나, 여성들의 손에 다이아몬드를 끼웠다 빼었다 하는 유행을 ‘현대화’니 ‘풍요’로 미화할 때, 그런 유행 속에서 현대화와 풍요를 찾으려는 여성은 남성의 지배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없다. 오히려 더욱 깊이 예속 상태에 빠지게 된다 ..  〈88∼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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