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의 집 6 - 개정증보판
야마모토 오사무 지음, 김은진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숲노래 만화책 2022.3.19.

책으로 삶읽기 732


《도토리의 집 6》

 야마모토 오사무

 김은진 옮김

 한울림스페셜

 2005.1.20.



‘지적 장애, 농아, 뇌성마비. 의료보조로 Y시의 ○○정신병원 입원 결정’ 그렇게 해서 네 살밖에 안 된 가네다는 어린 시절을 정신병원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12쪽)


가네다는 힘들게 기어가서 그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그 속에는 누군가가 대량의 고춧가루를 넣어 놓았었다. 그런데도 어린 가네다는 그것을 먹었다. 그곳에 사는 이상 먹을 것을 찾아 기어갈 수밖에 없었고, 무엇이든 먹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 병원이 폐쇄되기까지 4년 동안 그런 생활이 계속되었다. (15쪽)


이 나라는 그런 나라이다. 입으로는 복지를 외치면서도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여러 가지 제도로 묶어온 것이다. (25쪽)


“이제 겨우 깨닫게 됐어요. 전 지금까지 노부오가 제게 고통만 준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노부오 덕분에 미도리와 게카루, 그리고 선생님들과 만날 수 있었고, 오사카와 교토 분들과도 만날 수 있었어요.” (84쪽)



《도토리의 집 6》(야마모토 오사무/김은진 옮김, 한울림스페셜, 2005)을 되읽었다. 이 그림꽃책이 처음 우리말로 나오던 무렵을 떠올리자면 ‘나랑 너’라는 사이가 매우 멀었다. 예전에는 《사랑의 집》이란 이름으로 나왔는데, ‘특수교육’이란 이름으로 길잡이가 되려는 이들조차 “만화책은 안 봅니다” 하면서 손사래를 쳤지. 이제는 ‘비장애인’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일 만큼 나라가 조금 바뀌는데, ‘비장애인·장애인’이란 이름을 쓰더라도 바탕은 ‘장애’를 바라본다. ‘사람’을 바라보는 이름이 아니다. 생각해 보라. 갓난아기가 장애인인가? 어른이 되면 비장애인인가? 사람을 오롯이 사람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채 이름을 붙이면 골은 그저 깊어갈 뿐이다. ‘장애인 통합교육’이란 말이 우습다. ‘억지로 통합’을 할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무 울타리가 없이 함께 놀고 일하고 배우고 어우러지는 길’을 갈 적에 아름답고 알맞다. 《도토리의 집》 여섯걸음에서는 ‘몸이 힘든 아이’를 맞이한 나라(일본 정부)가 아이를 우격다짐으로 정신병원에 집어넣어 괴롭힌 줄거리로 첫머리를 연다. 정신병원이란 이름인 곳은 왜 있어야 하고 무엇을 하는 데일까? 떨어뜨리기(격리)를 왜 할까? 우리는 저마다 다르기에, 누구는 무엇을 제법 하고 누구는 무엇을 도무지 못 한다. 아무리 해도 밥을 못 짓거나 바느질을 못 하는 사람이 있고, 달리기가 느린 사람도 수두룩하다. 금을 긋는 모든 일은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금긋기(차별)로 나아간다. 장애도 비장애도 없다는 삶을 바라볼 때라야 제대로 바뀐다. 아기를 안고 걸어가는 어버이를 헤아리면서 거님길을 살피면, 바퀴걸상으로 걸어다닐 사람이건 두 다리로 걸어다닐 사람이건 모두 홀가분하다. 오늘날 이 서울나라(도시공화국)는 온통 “난 장애가 아니야” 하는 생각을 심으면서 우루루 쏟아지는 물결로 ‘돈·이름·힘’만 바라보는 사나운 죽음터라고 느낀다. 배움터(학교)가 참말로 배움터라면 배우려는 사람을 막아야 할 일이 없고, 다음 배움터로 나아갈 발판이 아닌, 살림을 손수 짓는 삶을 스스로 그리도록 북돋우는 ‘삶·살림·사랑 배움터’여야 맞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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