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읽을 짬 (2021.10.9.)

― 인천 〈딴뚠꽌뚬〉



  인천에서 나고자라다가 스무 살을 앞두고 인천을 떠났고, 서른 몇 살에 인천으로 돌아와서 큰아이를 낳고는, 어릴 적에 늘 뛰놀던 골목을 새삼스레 걷다가, 전남 두멧시골로 터전을 옮겨 조용히 살아갑니다.


  인천에서 ‘인천’이란 이름은 그리 오래지 않고 좁습니다. 요즘은 부평·부개·강화·검단·소래·옹진·산곡·연수·주안까지 ‘인천’으로 묶지만, 예전에는 중·동구만 인천으로 여기고, 다른 곳은 인천이 아니었습니다. 중·동구에서조차 ‘인천’은 더욱 좁았어요. 다른 곳은 늘 그곳 이름인 부평·부개·강화·검단·소래·옹진·산곡·연수·주안이었습니다.


  전남 고흥에서 살고 보니, 저희가 깃든 도화면 사람들은 “‘고흥’에 간다”고 할 뿐, “‘읍내’에 간다”고 하지 않습니다. 면소재지뿐 아니라 마을로 갈라요. 이른바 ‘리’를 놓고 딴사람입니다. 인천으로 보자면 주안은 ‘주안’일 뿐, ‘인천’이 아닙니다. 서울에서 마포는 ‘마포’일 뿐 서울이 아니요, 부산에서 수영은 ‘수영’일 뿐 부산이 아닙니다.


  이렇게 마을을 살피는 눈은 갈라치기가 아닙니다. 다 다른 마을하고 고을이 다 다른 빛과 숨결로 살아가는 길을 보자면 다 다른 이름에 다 다른 바람을 읽을 노릇이에요. 뭉뚱그려서 ‘인천·서울·부산·고흥’이랄 수 없습니다. 저는 인천 도화1동 수봉산 기스락 골목집에서 태어나고서 주안동하고 신흥동에서 자라다가 연수구로 옮겨 푸른배움터를 두 해 다니고서 인천을 떠났습니다.


  주안은 매우 넓습니다. ‘주안8동’까지 있으니 엄청나지요. 이 가운데 옛 ‘시민회관’ 곁은 또 다르고, 이 둘레에 연 〈딴뚠꽌뚬〉이 무척 궁금했어요. 주안에는 극장도 많았고, 책집도 아직 여럿 있으나 인천사람은 주안을 거의 ‘술집·학원·여관·교회·지하상가 골목’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안골은 수수한 사람들이 조촐히 살림을 짓는 조용하면서 따사로운 마을이에요. 인천에 볼일이 있어 갈 적마다 주안에 내려 〈딴뚠꽌뚬〉 앞에 왔는데, 다섯걸음 만에 드디어 속을 들여다본 이날, 이다음에 갈 곳에 얼른 달려가야 해서 부랴부랴 나와야 했습니다. 뭐, 느긋이 깃들 다음날이 있을 테지요. 신흥동에서 7∼17살 나이를 살았는데, 이동안 집부터 주안까지는 늘 걸어서 오갔습니다. 철길도 마을길도 더없이 사랑스러웠거든요.


  배움터에서 얻어맞거나 골목에서 양아치한테 돈을 빼앗긴 날은 어김없이 주안까지 철길을 걸었습니다. 울면서 걷다가 어느새 조용히 노래를 불러요. 옛날 소금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하늘을 보고 마을을 보기에 책을 곁에 놓고서 읽습니다.


ㅅㄴㄹ


《위안부 문제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까?》(히라이 미쓰코/윤수정 옮김, 생각비행, 2020.3.25.)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살림 기획·허주영 엮음, 호랑이출판사, 2018.5.7.)

《새러데이 인천 1호》(진나래 엮음, Chur Chur press, 2018.12.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