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87 공무원



  작은아이가 열한 살일 적에 인천으로 책집마실을 함께가는 길에 우체국하고 글붓집(문방구)을 찾다가 실컷 헤맸습니다. 도무지 못 찾겠을 뿐 아니라, 길알림판을 볼 수 없습니다. 우체국이나 글붓집을 알려주는 판이 없어 아쉽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부릉이(자동차)를 모는 사람한테 알려주는 판은 찻길 복판에 있고, 다리로 걷는 사람한테 알려주는 판은 아무 데도 없어요. 저는 아기수레를 안 썼어요. 아기를 등에 업거나 품에 안으며 걸었습니다. 아기가 어버이 품을 포근히 여기는 줄 알아서 업거나 안기도 했으나, 거님길이 워낙 엉망이라 수레에 아기를 태울 엄두는 아예 안 냈습니다. 나라지기(대통령)나 벼슬꾼(공무원·국회의원)이나 고을지기(지자체장) 가운데 거님길을 스스로 걸으며 살림(행정)을 살피는 이는 몇이 될까요. 부릉이조차 남(심부름꾼)이 몰아 주곤 합니다. ‘공무원시험’부터 책상물림인데, 막상 벼슬꾼이 되고 나서도 책상물림에다가 안 걸어요. 마을도 살림도 아이 눈높이도 모르는 채 벼슬을 쥐고 달삯을 받습니다. 누구를 탓할 마음은 없어요. 걷지 않으면 하늘을 못 보고 풀꽃나무를 못 사귑니다. 안 걸으면 아이랑 놀 틈이 없고, 마을하고 등져요. 이런 삶길은 그분들 스스로 고단할 텐데 그 삶을 그냥 가는 듯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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