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찾는 책은 (2021.10.29.)
― 서울 〈글벗서점〉
모든 책은 스스로 찾아나서는 사람한테 문득 눈에 뜨이면서 손에 쥘 만합니다. 스스로 찾아나서지 않는 사람한테 덥석 안길 책은 없습니다. 마음을 열고, 눈길을 기울이고, 생각을 쓰고, 품을 바치고, 돈하고 말미를 들이기에 비로소 책 하나를 건사해서 새롭게 읽어 오늘을 노래한다고 느낍니다.
빨리 죽을 생각은 없는 터라 책을 빨리 읽지 않습니다. 둘레에서 저더러 “글을 빨리 쓴다”고 말합니다만, 저는 글을 빨리 안 씁니다. 제 머리를 거치고 마음을 지나 눈빛에 닿고 손끝으로 옮겨서 반짝반짝 글씨로 태어날 때를 기다리다가 넌지시 샘물처럼 길어올릴 뿐입니다.
오랜 벗님이 제가 그자리에서 덥석덥석 손으로 쉬잖고 한 쪽을 다 채우는 글쓰기를 보시더니 “숲노래 씨는 옮겨쓰기(필사)를 하는 사람보다 빨라요. 이야기를 새로 쓰는 사람이 어떻게 더 빠르지요?” 하고 묻습니다. 곰곰이 생각했어요. 저도 ‘옮겨쓰기’입니다. 이 푸른별에 늘 흘러다니는 빛줄기를 글로 담고 싶구나 하고 생각하면 어느새 글감이 머리에 마음에 눈에 손에 쏟아져요. 저 혼자만 알아보기를 바라지 않기에 되도록 반듯반듯 옮겨적으며 아이들도 읽기를 바라고, 이 글을 글판으로 두들겨서 여러 고장 이웃님도 넉넉히 읽도록 풀어놓습니다.
틀림없이 ‘글쓴이 이름 : 숲노래’일 테지만, 저는 제가 쓴 글을 혼자 썼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풀꽃나무가 곁에서 속삭이고, 멧새가 옆에서 노래합니다. 곁님하고 아이들이 보금자리에서 신나게 놀면서 웃음빛으로 알려주고, 숱한 이웃님이 이녁 삶으로 일깨울 뿐 아니라, 온나라 모든 책집에서 알뜰히 건사해서 징검다리로 이어주는 책을 만나니 느긋이 배우면서 ‘옮겨쓴다’고 여깁니다.
서울 이웃님 한 분한테 서울에 있는 아름책집 몇 곳을 알려주려고 〈글벗서점〉을 함께 찾아갔습니다. 따지자면 모든 마을책집이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꼭 어느 책집을 자주 찾아가야 하지 않습니다. 가벼운 차림새로 가까이 드나들 마을책집을 자주 오가면 즐거워요. 전남 고흥 두멧시골에서 사는 저로서는 어디나 다 먼길이라 며칠치 길삯하고 책값을 모아서 한꺼번에 돌아볼 뿐입니다.
요즈막에 새로 태어나는 적잖은 마을책집 책차림은 꽤 엇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이렇더라도 하루하루 흐르는 사이 스스로 다 다른 눈썰미를 펼쳐서 여러 해 뒤에는 그야말로 다 다른 책차림으로 빛난다고 느낍니다. 처음부터 책을 다 알거나 잘 알아서 책집을 여는 분은 없고, 읽님(독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르’기에 찾아서 읽고, 찾도록 다리를 놓으며, 찾도록 글을 새록새록 쓰기도 합니다.
ㅅㄴㄹ
《러시아의 역사》(C.H.스이로프/기연수 옮김, 동아일보사, 1988.9.15.)
《인부수첩》(김해화, 실천문학사, 1986.9.30.)
《우리들의 사랑가》(김해화, 창작과비평사, 1991.6.5.)
《咸錫憲 全集 5 西風의 노래》(함석헌, 한길사, 1983.9.30.)
《왜 뱀은 구르는 수레바퀴 밑에 자기머리를 집어넣어 말벌과 함께 죽어버렸는가?》(강경화·김유신·신승철·강창민·마광수·안경원, 유림, 1978.12.25.첫/1988.10.31.넉벌)
《追憶祭》(강은교, 민음사, 1975.6.15.)
《미국노동운동비사(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리처드 O.보이어·허버트 M.모레이스/박순식 옮김, 인간, 1981.5.7.)
《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곽차섭, 푸른역사, 2004.1.10.)
《600년 서울 땅이름 이야기》(김기빈, 살림터, 1993.12.30.)
《내가 만드는 요리》(김성수 엮음, 소년생활사, 1979.1.15.)
《新註 墨場必携》(洛東書院, 1930.2.15.첫/1941.10.15.넉벌)
《Better English everyday Junior 2》(홍봉진, 일심사, 1956.3.20.첫/1959.4.10.넉벌)
《체육 6》(교육부 엮음,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7.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